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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미술가들 Artists of Tomorrow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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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김경섭, 김윤섭, 노경민, 배윤환, 정진희, 애나 한
  • 전시기간 2017-07-25 ~ 2017-10-09
  • 전시장소 청주시립미술관 본관 전관

전시개요

 

이제 개관 1주년을 맞이한 신생 공립미술관으로서 청주시립미술관은 올해부터 <내일의 미술가들>이라는 제명으로 청년작가들에 주목하는 전시를 연례적으로 개최한다. 올해는 많은 작가들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하고 수차례의 학예팀 회의를 통해 여섯 명의 작가, 애나 한, 김윤섭, 노경민, 정진희, 김경섭, 배윤환이 선정되었다. 이들 가운데는 이미 미술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는 작가들도 있고, 아직 화업의 시작 지점에 서 있는 작가들도 있다.

청주시립미술관 뿐 아니라 각 지자체에 기반한 거의 모든 공립미술관들은 대부분 연례전으로 청년작가전을 개최한다. 공립미술관들이 청년작가들에게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술계의 생태계를 적정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공공적인 목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탄탄한 명성이 있는 작가들 뿐 아니라 새로이 성장하는 작가들이 평단의 주목을 받고 발을 디딜 수 있도록 하여 세대의 순환이 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젊은 예술가들은 상대적으로 문화예술의 기반이 취약한 지방보다 기회가 더 많은 수도권으로 활동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로 인해 지역의 예술이 더 빈곤해지는 악순환을 초래하지 않도록 청년작가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회 제공을 하고자 한다.

 

작가소개

애나한

 

애나 한의 <Fear Me Not>은 거대한 푸른 공간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그의 설치 작업은 늘 주어진 공간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하여 불특정한 전시 공간을 특정한 장소로 만든다. 청소년 시절에 유학을 떠나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다시 들어와 여러 레지던시를 거쳤던,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았던 삶의 경험은 그로 하여금 공간에 대한 특별한 애착을 가지게 하였다. 작가는 나의 이동과 이사는 진행형이며 한동안 정착할 수 없음을 아는 불안의 초석 위에 빛 · · · 선 등의 조형적 언어로 나만의 일시적 공간을 장소화한다라고, 자신의 공간 설치가 자신의 삶의 여정과 관계되어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태생부터 삶의 흔적이 말끔하게 제거되어 있는 모던한 전시장이라는 조건은 작가의 손을 거쳐 삶과 예술의 중간 지대로 바뀌고, 내용을 담는 빈 그릇으로서의 전시장은 개성과 활기를 띤다. 기존의 장소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그의 작품은 공간 설치 작품이지만 대단히 회화적이다. 주조색의 선택이나 공간의 구획, 그리고 빛의 사용이라는 요소들의 어우러짐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김윤섭

 

김윤섭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업의 모티프는 구글 어스(Google Earth)에서 보았던, 얼음처럼 고착된 풍경 속 사람들에 대한 인상으로부터 출발한다. 김윤섭은 위성을 통해 본 지구의 풍경이 인간이건 사물이건 관계없이 균질적으로 보이게 하는 현상, 마치 세계를 내 손안에 넣은 듯이 보이는 인터넷 위성사진에서 인간과 사물이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 같은 느낌을 더 적극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조물주의 시선으로 세계를 내려다보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로 오히려 인간이 사물화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김윤섭은 이러한 현상을 더 극단화시켜 실제의 사물들을 배치하고, 그 사물들의 특수한 형태를 흉내 내는 인간의 인체를 그려 병치시키는 방법을 취하였다. 세계를 사유하고 지배하는 주체임을 의심하지 않았던 인간이 오히려 스스로가 인간이 만든 사물객체의 흉내를 내는 것 같은 억지스러움을 통해, 김윤섭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노경민

 

노경민은 여러 측면에서 놀라운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도시 변두리의 낡은 모텔방 내부를 배경으로 하여 남성의 누드가 등장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남성 누드가 전통적인 한국화의 재료인 장지에 수묵채색 방법으로 구현되어 있다는 점, 또한 그것이 한국의 이십대 여성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그의 작업에 여러 층위의 접근을 가능케 한다. 긴 역사 속에서 남성적 응시의 대상으로서의, 남성적 에로티시즘의 표현으로서의 여성 누드는 남성의 시각적 언어로 자리 잡았다.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거슬러 여성 작가 노경민은 남성의 신체를 바라본다. 좁고 허름한 모텔방에서 노경민은 벌거벗은 남성 모델에게 멋진 남성미를 보여주는 자세가 아닌, 어딘지 허술한 자세를 취하게 한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있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못한 순간의 남성 신체는 어쩌면 가장 현실에 가까운 남성의 모습일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지점이 남성적 응시의 방식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노경민이 남성 모델에게 특정한 장소를 지정해 특정한 포즈를 요구하는 것은 기존의 성역할을 역전시키는 것 같은 행위이지만, 그 결과 그가 남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어딘지 모르게 동종의 인간으로서 느끼는 연민이 서려 있는 것이다.

 

 

정진희

 

정진희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작업들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림은 특정한 대상이나 사건을 고정시켜 이차원 평면에 안착시키는 것으로, 그려진 사건 이전과 이후의 시간이 포함되지 않는 반면,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구현되는 장면의 흐름은 단일한 이미지로 표현되기 어려운 서사를 포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정진희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움직임의 결과에 별다른 서사가 개입되지 않는다. 시간의 고요한 흐름을 표현하는 살랑거리는 풀꽃들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꼬리를 약간 움직이는 정도로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보인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별다른 사건이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그저 자연이 그러한 상태를 움직임을 통해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 일 없는 듯이 보이는 세상도 조금씩은 움직이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움직임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회화에 더 가까우며, 가로에 익숙한 모니터의 화면을 굳이 세로로 돌려세워 낯설게 보여주는 것도 작품을 화면이 아닌 그림으로 보게 만드는 장치이다.

 

 

김경섭

 

자신의 기억을 줄곧 작품의 소재로 삼는 김경섭 작가는, 가족과 자신의 과거 사진, 자신이 겪은 사건들, 기성의 이미지들, 그리고 현재의 요소들을 뒤섞어 그린다. 그 결과 하나의 화면 속에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뒤섞이고, 실제 겪은 사건과 상상이 혼합되어 혼란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처럼 시공간이 뒤섞인 화면의 단초는 작가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한 에피소드에서 출발한다. 그는 예닐곱 살 즈음 오로라를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중학생이 되었을 때 자신이 오로라를 보았던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이러한 기억의 혼돈은 이후 그의 화두가 되었으며, 오히려 기억의 혼돈을 조직화하는 것으로 작품의 모티프를 삼게 된 것이다. 김경섭은 여러 이미지를 하나의 화면에 뒤섞기도 하지만 단일한 이미지를 대상으로 하기도 하는데, 예컨대 2016년의 작품 <아이와 돼지저금통>은 단순한 하나의 사진 이미지를 재현한 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이한 감상에 휩싸이게 된다. 일견 아무런 신기할 것 없는 일상의 사진이지만 그것을 주목하여 재현한 작가의 눈을 통해, 지나간 과거의 한 장면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는 모종의 비밀이 관객을 사로잡는다.

 

 

배윤환

 

배윤환의 작업은 작가 내면의 엄청난 에너지를 느끼게 한다. 과거 다양한 재료의 실험을 거치던 시기에 그의 작업은 세상의 색채들이 다 뛰어나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발산의 에너지가 넘쳤고, 최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는 드로잉 베이스의 작업들에서는 기막힌 서사들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내면에서 들끓는 이러한 작업의 에너지에 대해 작가는 한 때 괴로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이 억지로 바뀔 수도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우글거리는 생각의 단초를 부여잡고 드로잉을 시작하는데, 그러한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우화와 상징들이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 재미있다. 곰과 연어의 우화, 목탄을 만드는 개구리 이야기, 금으로 스프를 끓여먹는 광부들의 이야기 등과 같이 지극히 개인적인 상징들과 서사 전개 방식이 향하는 곳은 작가 자신의 예술가적 생존에 대한 갈등이다. 예술가로서의 엄청난 에너지는 필연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제반 상황들에 대한 비유를 생성하고 그 결과로서의 작품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작가의 서사적 작품들로 드러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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