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roject by Dirk Fleischmann
with 박선아, 박정선, 박선주, 신효철, 김서연, 진희웅, 윤홍산, 장민희
디륵 플라이쉬만의 실체 없는 작업에 관해
2008년 시작된 세계 경제위기는 많은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일반 시민마저도 작금의 자본주의 체제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맞이할 것이라는 모종의 예감을 품도록 했다. 전에 없던 규모의 시장실패와 대규모 국가개입, 세계 각국에서 벌어진 시위, 미국에서 시작된 ‘점령운동’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저항은 그러한 예감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자본주의는 여전히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가장 큰 원칙 가운데 하나로 굳건히 유지되는 듯 보인다.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듯하며, 자본주의를 벗어난 ‘바깥’의 가능성은 좀체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동시대미술은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을 보일 수 있는가. 2005년 부산예술제에 참여해 한국을 처음 찾은 뒤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개념미술가 디륵 플라이쉬만은 ‘상업행위’라고 부를 수 있는 일련의 활동을 자신의 작업으로 삼고, 이를 통해 저 자신의 작업 안에서 ‘자본’의 흐름과 작동양식을 구현한다. 그는 물리적인 형태를 띤 작업을 제작하기보다 모종의 물리적 결과물이 그 부산물로서 발생하는 생산, 유통, 판매과정을 저 자신의 작업으로 간주하며, 그와 같은 자본주의적 경제행위를 구상하고 조사하는 행위마저도 작업의 범주에 흡수한다.
이러한 작업방식은 그가 슈테델슐레 예술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기에 진행한 mykioski(1998~2002)에서부터 확연히 드러났다. 그는 도매상에서 사탕과 초콜릿 바를 구매하여 임의로 정한 가격을 매겨 판매했고, 그러한 ‘사업’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철저히 다음 프로젝트를 위해 사용했다. 그는 교내의 자판기를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는가 하면(myvendingmachine, 1999-2000) 유통기한이 임박한 재고를 작품으로 만들어 정리하기도 했다(Missing Money, 2004). 리크릿 트라와닛의 전시에서는 수익을 남기지 않고 음식을 판매하는 대신 관객에게 금전적 이윤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이윤”을 받아냈으며(Nullrode, 2001) 비엔날레 참여 작가들에게서 메뉴를 제안받아 카페테리아를 운영하기도 했다(mybistro, 2002).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진행된 myfreerangechickeneggproduction을 기점으로, 디륵 플라이쉬만의 작업은 개인적인 차원의 유통과 판매를 넘어서게 된다. 이 작업에서 그는 일종의 협동조합을 설립하여 별도의 관리자를 두고 다섯 마리의 닭과 그들이 생산하는 달걀을 관리하도록 했다. 이 작업 이후 그는 자신이 졸업한 슈테델슐레 건물 옥상에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해 전기를 판매하거나(mysolarpowerplant, 총 25년 동안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으로, 8년 뒤 손익분기점을 넘기게 되어있다) 부동산을 판매하기도 했는데(Real Estate, 2007), 말하자면 사탕과 초콜릿 바로 시작한 ‘사업’을 다변화한 것이다.
이처럼 ‘사업 다변화’에 힘을 쏟은 뒤, 작가는 myforestfarm(2008~)과 Made in North Korea(2010)에서 자본주의 경제주체로서 한 차원 더 확장된 행보를 선보인다. myforestfarm은 필리핀 우림에서 작물을 재배해 인터넷으로 작황을 공유하고 저 스스로 규정한 ‘탄소 발자국’(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각국이 도입 중인 제도로, 산업행위를 통해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규제하는 국제적 단위이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로 자본주의 제도에서 파생된 관리체계를 모방/반복하며, Made in North Korea는 개성공단에서 직접 의류를 생산하여 판매, 유통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판촉행위를 진행함으로써 국가 간의 정치적 갈등마저 넘어서는 자본의 힘을 체현하고 그 속내를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면 단순히 자본의 흐름을 모방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제 이윤을 추구하고, 프로젝트를 통해 발생한 수익을 다음 프로젝트에 투자해 저 스스로 자본의 순환구조를 구축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작가는 오늘날 우리의 세계를 완벽히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에 관해 그것의 “바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취한다. 자본주의의 “바깥”이란 그저 환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날 자본주의에 관해 비판적/비평적 시각을 고취하기 위해 그것의 “바깥”을 상상하기보다 오히려 그에 관한 담론과 행위를 직접 수행하며 저 스스로 자본주의의 구조와 양상을 구현하여 비판/비평을 위한 틈을 만들어낸다. 박재용/ 워크온워크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