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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경 Choi Eun Kyoung : 서쪽의 초행 길 West of the stranger the way Choi Eun Kyoung : West of the stranger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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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 전시기간 2012-12-27 ~ 2013-01-06
  • 전시장소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개요

최은경 작업 : 그림은 그리는 그리움

1.그리움(개념)

그림을 왜 그림이란 단어로 사용했을까를 생각해 본적이 있다. 그리다와 연관이 있으며 동사 ‘긁다’가 어원이라는 정도가 일반적인 얘기이다. 하지만, 그림은 그리움과 막연하게나마 연관성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증은 없지만, 심증으로 말이다. 그리움과 애잔함이 깊어져서 그리기로 표현된 그림. 상상만 해도 그 그림은 좋은 그림일 듯하다.

“현재 아버지 삶의 터전인 관청리(전북 정읍시 고부면)를 배경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곳은 얼마 전 아버지가 40년 서울의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간 아버지의 고향이다. 하지만 젊은 날의 꿈과 희망이 좌절로 튕겨져 나간 그 상실의 자리를 위로해줄 꿈에도 그리던 마음의 고향, 노스탤지어는 아니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서울의 끄트머리보다 더 대책 없는 생계의 피로와 정처 없음이 고여 있는 곳이다. 아버지는 그런 곳에 궁여지책으로 터를 잡아 집을 짓고, 또 다시 삶의 터전으로 생활을 일구었다. 그렇게 망쳐지고 어그러진, 내몰린 그 끝자락에서 다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전망해 보는 것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의 주된 내용이다.“ -작가노트 ‘관청리 풍경’ 중에서

나는 이 작가노트를 통해 우리들의 아버지를 느끼는 동시에 막연하게나마 이해하고 있던 최은경 작품의 매력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작가가 스스로 얘기했던 기성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서정성, 진정성의 동질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화가 최은경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2003년 무렵이다. 실내풍경을 주로 그렸는데 ‘발축전’이 써있는 거울, ‘복’자가 새겨져 있는 수건, ‘一身又一身’(日新又日新을 작가의 각색)액자가 있는 화장실, 입춘대길 등 텍스트가 있는 작업인데, 작가는 이를 통해 회화의 평면성, 전면성을 스터디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마치 고전주의 화가 다비드「마라의 죽음」(1793)의 탈주술화와 주술화 관계, 텍스트가 작품의 내용을 암시하는 그것과 흡사하다. 일련의 실내풍경작업이 진행되고 화가의 관심은 실외풍경으로 확장되어간다. 확장이란 표현을 썼지만, 거창한 내용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관심이라고 해야 옳을 듯하다. 낙후된 현실풍경, 스터디를 통한 개념의 시각화, 스토리텔링 회화, 이발소그림에 대한 오마쥬 등 궁극적으로 화가와 타자가 만나는 접점의 영역에 대한 관심을 그림에 담아 표현하고자한다.

작가인터뷰와 자료검토로 자신의 개념을 구체화하기위한 노력과 글을 잘 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르네 마그리트의「이미지의 반역」(1929)에 나오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처럼 최은경의 그림도 “보이는 풍경을 재현하는 그림이 아니다”이다. 나는 자신의 개념을 체계적이고 진정성 있게 글로 표현하는 화가는 부담스럽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나보다 글을 잘 써서 싫고 다른 표현을 찾다가 못 찾아 작가노트를 그대로 인용하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던 최은경의 작품보다 2~3배는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하는데, 뇌의 용량의 한계로 혼란스럽다. 이런 총체적인 난국에도 2010년 이후, 최근 그림을 중심으로 작품에 담겨 있는 그리움(본질)의 실체를 알아보기로 하자. 여기서 ‘그리움’이란, 보고 싶어 못 견디는 상황이라기보다 자의식 또는 무의식속에서 본향(本鄕)을 찾는 회귀본능, 유년시설부터 기억 속에 자리하고 있는 익숙한 풍경, 화가의 관심사를 암시하는 의도된 풍경들을 의미한다. 그중에서 화가의 최근작들은 관심사를 암시하는 의도된 풍경들에 시선이 모아져 있는 듯하다.  2010~12년「관청리 풍경, 고부 가는 길」연작에서 화가의 관심사가 잘 나타나 있다. 1960~70년대 먹고사는 문제가 시급하여 산업화과정은 대한민국의 영토적 지형까지 바꾸어 놓았다. 화가의 관심을 끄는 풍경들은 이런 산업화과정에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놓은 집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는 풍경이라기보다 급조된 산업화의 징후로 어울리지 않는 동거의 어색한 풍경들을 보여주고 있다. 비싼 땅값으로 도시에 세울 수 없는 조립식 창고들, 그린벨트해제로 난개발에 희생된 땅들, 주변 풍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어색한 조합이 만들어낸 비호감 들이 모여 2012년 대한민국의 외곽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여기에 서울 위성도시 공장지대에 모여 있던 인력들,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가 더하여 농촌지대 새로운 인력의 한축을 구성하게 된다.

이런, 다양한 원인들이 모여 구성된 어색한 풍경이 최은경의 관심을 이끌어 낸 것으로 생각된다. 화가는 관심사와 생각을 텍스트로 정리하여 개념화, 맥락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림에 담고 있는 의도를 몇 가지 방식으로 극대화시키는 전략을 엿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이 최은경 그림의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 있다. 장점은 단순한 그림이 아닌, 다양한 사회현상과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모두 내려놓고 편하게 그림을 감상하는 걸 방해한다는 것이다. 그것의 불편함은 필자가 느끼는 부분이기도 하다. 최은경의 그림 내용을 적당히 알고 봤을 때 시각적인 즐거움이 먼저였다. 과도한 의미부여와 전략적 접근이 시각적인 조형미를 위축시킨다는 것을 참고하기 바란다.

2.그림(형식)

“ 나는 그림을 그릴 때 사물의 겉과 속을 동시에 표현하려고 한다. 혹은 끝을 통해 시작이나 시작의 전조를 표현하고 싶어 한다. 구체적인 내러티브의 내용이지만 하나의 압축된 추상적인 ‘결’로 느끼도록 표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밀고 나가는 것은 나의 그림의 원동력이 된다. 그 ‘결’이란 재현할 순 없지만 알 수 없다고도 말할 수 없는, 구체적 현실성에 대한 요약 불가능한 총체성 같은, 그런 ‘정서’이지 않을까. 어쨌든 그것은 보편적이면서 동시대적인 그 어떤 '것'일 텐데, (그림에서는) 3차원의 일루전이 아니라 마치 날씨 같은 형태로 불현듯, 때 아닌 곳에서 예기치 않게 드러날 것이다. 그것을 잡아채서 붙잡아 두는 일, 그것이 ‘회화’일 것이다.” -작가노트 ‘회화’ 중에서

수년전에 못 그린 그림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잘 그리는 이가 못 그리는 척하고 못 그리는 이가 못 그리는 척하기도 했지만, 최고는 잘 그림과 못 그림의 경계에 있는 이가 나름대로 열심히 그린 그림이다. 이는 거의 신의 축복에 가까운 단계인데, 몇 가지 특징이 있다.

1.사물과 배경의 경계가 불분명하거나, 오히려 경계에 흔적들이 쌓여 진해진다.
2.입체적인 표현에 과감성이 부족하여 부스스 하게 표현된다.
3.물체의 명암을 고유색 하나의 농담(濃淡)으로만 조절한다.
4.자신 없는 붓질이 개성으로 둔갑한다.
5.위의 4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서 원근감이 표현되고 색감에서 개성이 살아있다.
6.표현기법과 색감이 작품의 개념과 내용을 한층 부각시킨다.
7.마지막으로 뭔가 부족한 듯 여운(餘韻)이 남고 잔상(殘像)이 느껴진다.

위의 조건 중에 6번,7번을 포함한 4가지 이상에 해당되면, 좋은 그림이다.
최은경의 그림을 1998년부터 2012년까지 정리해놓은 파일을 보았는데, 다른 화가들과 다른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되었다. 첫째는, 그림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같은 맥락 안에서 끊임없이 다름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초창기의 실내풍경들을 보면, 화가 스스로도 인정했지만, 잘 그리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봐도 잘 그리는 그림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뭔가 매력이 끌리는 그림이란 생각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림 안에 텍스트(글자)를 넣어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면서 최은경의 개성이 잘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들을 작가노트로 잘 정리하는 습관은 그림의 빈틈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 성과는 2010년부터 그리기 시작한 실외풍경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도시 외곽풍경에 대한 여러 가지 단상, 스토리텔링에 의한 상황 서술적 회화, 이주의 삶에 대한 풍경 등을 특유의 표현방식으로 보여준다.

분명, 최은경 보다 잘 그리는 화가는 많다. 그런데, 최은경만큼 매력이 있는 화가는 드물다. 그럼, 정말 궁금해진다. 잘 그려야 좋은 그림인데, 그 보다 부족한데 더 좋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러면, 잘 그리는 화가들은 없는데, 최은경만 있는 것을 찾으면 해답이 될 듯하다. 그건, 뭔가 부족한 여운과 잔상, 표현기법과 색감이 화가의 감성에 승화된 상태일 것이다. 최은경이 의도 하진 않았겠지만, 긴 세월 동안 그림을 그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교감이 그 해답이다. 생각의 틀, 정서, 손끝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나오는 감성이 묻어나는 그림이 그것이다.

현재, 좋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최은경 그림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아직도 매장량이 풍부한 광산처럼, 20여 년 동안 서서히 발전했던 그림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하지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아무리 뛰어난 개념과 남이 보지 못한 현실을 볼지라도 최은경의 그림은 시각적으로 보여 지는 현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름다운 풍경과 긍정적인 현실을 미화시키진 않아도 보여 지는 그의 그림 속 드리워진 세상은 충분히 그리워할 만큼 정감 넘치며 애잔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손성진/ SOMA미술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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