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호 작품론 : Empty Series - 타자에 의한 존재 확인, 그 욕망의 관한 시퀀스
현대인의 실존의 문제란 여전히 내면 세계와의 소통을 하나의 본질로 삼는 예술창작의 중심에 존재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이다. 현대미술에서 비시각적으로 인간의 정신과 물리적 상황을 통제하는 가치와 체제의 현상 및 논리를 진단하고 현대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연구하며 이를 통해 처한 인간의 현존의 실태를 다시 작품으로 재현한다는 것은 그 형식과 내용 있어 무척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포함하는 작품들의 존재론적 고찰은 언제나 시대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좀 더 인간적인 차원으로의 회복을 꿈꾸기도 하지만, 어떤 희망적 미래나 대안을 제시하는 대신 그 현상 자체를 다루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을 지배계급에 위치시키고 타자들을 시험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 이것을 다루는 범주 역시 다양할 것이다. 전지구적 차원일 수도 있고, 사회적 차원일 수도 있으며, 사적인 차원일 수도 있다.
서완호 역시 이와 유사한 주제의식을 바탕으로 개인이 아닌 개인, 개인이자 개인이 아닌 이들의 자화상을 통해 이러한 현상을 연구하고 재현한다. 사실 피상적으로 그의 작품을 이해한다면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 정도로 그 의미가 그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괄적이고도 구태의연한 결론이 그가 설명하는 작품의 확고한 정의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현대인이 직면한 소외와 고립의 상황을 넘어 좀 더 능동적으로 자신을 폐쇄하고 타자를 거부하는 상황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완호의 현대인의 자화상의 의미는 좀 더 차원을 달리해, 급기야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고립하기에 이른 현대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우선 서완호 작가의 기본적인 화풍은 극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열심히 그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 특정한 상황 혹은 배경으로 한 1인을 캔버스의 중심에 둔 그의 회화는 작가의 역량을 충분히 설명할 만큼 훌륭한 표현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의 회화 속 예사롭지 않은 등장인물들은 늘 우리들에게 하나의 물음표를 던지게 되는데, 바로 그들이 머리에 착용한 그 어떤 것 때문이다. 인물들이 머리에 쓴, 다소 생뚱맞기만 한 그 물체는 작품 속에서 유일하게 이질적인 요소로 존재하고 있는데, 사실상 이것은 그 어떤 추상적 요소가 없이도 현실과 판타지를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즉 서완호가 바라보는 인간의 현실적 차원과 초현실적 차원이 한 작품 속에서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서완호는 언제나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소통과 이해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모든 예술가에게 있어 너무나도 당연한 문제지만, 사실 그렇기에 늘 예술가들이 고민해야 하는 결부된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서완호의 소통과 이해의 문제는 예술과 관객의 관계와는 무관하게, 그가 속한 세상 내에서 그가 감지한 철저히 인간적인 문제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전작들로부터 서완호가 담담하게 목도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발견했고, 나아가 이것이 고립되어버린 현대인들의 전반적이고도 전형적인 현상임과 동시에, 능동적으로 타자와의 진실한 소통을 거부하는 철저한 개인주의에 관한 비관적인 진단을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작가 서완호도 이러한 소통의 부재에 동참하고 있는 주체는 아닌가를 지난 비평에서 지적한 바 있었다.
하지만 그의 최근작들을 보면서 약간 생각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그의 전작에서 서완호가 인물들에게 씌운 단단하고 육중한 인공물은 현대인의 심리에 내재한 강력한 방어기제이자 개인주의적 성향의 심리상태를 상징하는 것임은 자명하지만, 사실상 이것은 서완호 스스로가 느끼는 갑갑함, 주변인들과의 진실한 소통과 공감의 부재에 대한 씁쓸함에 대한 개인적 내러티브에 더욱 가깝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작품에 드러나는 그의 차갑고도 침잠된 무거운 시선의 이전에는 작가의 소통과 공감에 대한 순수한 의지가 존재했을 것이라는 뜻이다. 일단 그들의 머리 위의 오브제는 차치하고, 그들이 작품 속에서 입고 있는 옷이나 착용하고 있는 물건들, 그들의 대부분은 적극적으로 시대를 수용하는 젊은 세대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데, 이들은 현대인을 표상하는 하나의 전형(prototype)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가와 비슷한 세대의 주변의 인물들이자 그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대상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최근작이 전작들에 비해 더욱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인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으로부터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퇴폐적이고 육감적인 느낌이 더해진 작품은 이전 작에서의 담담한 시선과 진단을 넘어 직접적인 경험과 감각의 경험으로 충분히 우리에게 접근하고 있다. 즉, 무감각한 공간과 인물로 채워졌던 전작들에 비해 그는 최근작에서 보다 생생한 날것의 느낌을 채우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통과 이해로 나아가고 싶다는 작가의 열망과 바람이 더욱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전작들을 현대인의 실존 방식을 담은 풍경을 제시하는 것으로 본다면 최근에는 인물 그 자체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엿볼 수 있는데, 기존 작품과는 달리 아주 구체적인 배경적 요소들을 대부분 소거하고 공간감만을 부여하는 대신 인물의 특징을 집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대상과의 진실한 소통에 대한 욕구에 관해 더욱 몰두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머리를 가린 오브제로 무겁고 버거운 인공물 대신, 검은 비닐을 선택해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상황과는 너무나도 생경한 쇠 재질의 무거운 오브제가 부여하던 초현실적인 분위기 대신 가볍고 흔하기 그지없는 현대의 대량생산물인 검은 비닐로 요소가 바뀌면서 작품의 의미와 느낌은 더욱 은밀하고도 실감이 나는데 서완호가 오랫동안 연구해왔다는 살색의 색감과 질감은 이러한 오브제의 변화와 더불어 인물을 보다 가볍고 인스턴트한 존재의 느낌으로 그려내고 있으면서 동시에 작가의 충실한 열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부분 정면으로 향해있는 신체와 전통적인 회화방식 등으로 너무나도 정직하게 표현된 작품의 구성은 주제와 형식에 아이러니한 느낌을 더욱 강조하고 있어 흥미롭다. 작가노트를 통해 작가가 설명하듯 구상과 개념의 혼용을 위해 성립시킨 작품의 조형적 완성도는 그가 의도한 대로 다소 세기말적인 느낌과 함께 작품의 주제 전달에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게다가 이전에는 그의 회화에 하나의 공식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조금씩 그러한 공식에서 벗어나 보다 사적인 내러티브와 욕망을 더욱 강조하며 다양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이며, 나아가 가장 최근작에서 그는 과감하게 등장인물의 눈을 표현함으로써 진실한 소통의 희망을 바라고 있음을 혹은 추구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역설하기까지 한다.
서완호에게 있어 눈과 입은 대상과 소통하는 직접적인 기관이자 핵심적 통로로 의미한다. 그래서 육중하기 이를 데 없는 인공물이나 혹은 비닐 얼굴을 가린 그 대상들은 외부와의 소통을 차단하고 진심을 은폐하는, 인간미가 감지되지 않는 메마른 현대인이 표상이자 그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경험한 주변인들이다. 이런 그들을 대하던 작가의 시선과 감정은 전작에서 느껴지던 비관적 시선에서 이제는 눈과 입으로 진실한 소통을 하고 그렇게 상대방의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를 바라는 희망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서완호의 작품의 가장 근본적인 주제는 처음부터 결국 '나라는 존재의 확인'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즉 대상적 내러티브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사적욕망의 내러티브였다는 뜻이다.
어느 수준에 이미 달한 작업적 역량과 확고한 주제의식이 이제는 그러한 극사실을 기반으로 어떠한 추상성을 더욱 가미하고 새롭고 다양한 공식을 만들어낼지, 어떻게 그의 열망과 희망을 표현해낼지 이제는 그 진화의 과정을 지켜볼 차례이다. 추명지/ 독립큐레이터, 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