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2014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3번째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기획자 장 루이 쁘와트방의 협업으로 ‘고스트 메모리즈Ghost Memories’라는 주제로 진행된다. 장 루이 쁘와트뱅은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3개월간 평론, 기획자로 체류하면서 작가들의 작업에 다양한 각도의 조언과 해석을 바탕으로 전시를 풀어낸다. 전시장은 현재 입주하고 있는 작가들을 중심으로 배치, 작업에 대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유령Ghost, 비실재Non-real, 역설Contradiction, 이면Envers, 시공간의 곡률Courbure de l’espace-temps 등 5개의 소주제로 분류하였다. 이 개념들은 현대미학의 층위에서 주요하게 작동된 몇몇의 개념들이며 이번 전시를 이루는 중요한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장 루이는 이번전시에서 그가 파악하고자 했던 예술적 태도, 미적인 것으로의 탈주 등 정의 내림과 고정된 의미에서 미끄러지는 것에 현대예술을 배치하고자 하는 것이다. 작품에 관련된 섬세한 담론, 유령의 보이지 않는 의미를 나누는 것에서 이번 전시는 시작된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다르게 보기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리기나 만들기 등의 기술 연마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최우선 과제는 아니다. 예술가는 무엇보다 세상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을 ‘다르게 본다’는 것은, 단지 비평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거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과는 다르다. ‘다르게 보기’라는 것은 우리가 당연히 현실이라고 부르는 것이 실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보통 말하는 그런 방식으로는 말이다.
예술가는 세계의 단일성을 믿지 않는 그런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번째로 현실이란 우선 ‘인식’의 문제이며 예술가는 스스로가 세계를 인식하는 태도가 독특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예술가로서 그가 이 세계의 양상을, 사물을, 존재들을, 몸을, 얼굴을 더욱더 생생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예술가들이 언뜻 평범한 것들 속에서도 감동적인 무언가를 이끌어낼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또 다른 현실’은 예술가에 의해 일련의 방식으로 정리되고 기호와 상징들로 구성되어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이다. 예술가는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모두 해낼 수 있어야만 한다. 우선 남다른 시선으로 세계의 양상을 포착해낼 수 있어야 하고, 또 자신이 포착한 그 세계를 남들과 어느 정도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꾸어 구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창조 행위의 연금술
그리고 여기 변화를 만들어내는 마술 같은 행위가 있다. 예술가는 창조자이고, 데미우르고스(Demiurge 플라톤 학파에서 말하는 우주창조신. 조물주)이며, 납을 금으로 바꾸고자 하는 연금술사이다. 그들은 선, 색채, 면, 디지털 이미지, 천, 자수용 실, 세라믹 등을 사용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보다 더욱 생생하고 진실한, 훨씬 아름답고 또 혼란스러우며 괴롭기도 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현해낸다. 이러한 작은 틈새, 현실 세계의 견고함 속에 깃든 이 작은 ‘다름’이 바로 모든 창조의 용광로이다. 예술가에게는 이 현실 세계보다 그가 경험적으로 인식한 세계를 향한 의문점과 꿈들이 오히려 더욱 현실성을 지니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차이를 통해 그들은 다채로운 세계를 구현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가늠한다. 사용하는 재료가 무엇이냐에 상관없이 바로 그곳이 예술가의 붓을 담글 진정한 원천이다. 그곳이 바로 다양한 기호와 상징들을 그려낼 물감이 흐르는 장소이고, 그곳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만들어낼 연금술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 양상이 소극적이든 자신만만하든, 혹은 복잡하거나 반대로 단순하거나 간에 예술작품이란 이러한 남다른 시선의 기억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예술가가 인식한다면, 그는 자신이 늘 두려워하거나 혹은 희망해 온, 바로 ‘그것’을 만들어내는 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술가는 그것이 유령이라는 것을 납득한다. 원래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꿈과 같은 재료들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의 짧은 인생 또한 잠으로 둘러싸여 있는 거지” 라고 셰익스피어가 자신의 작품 [폭풍우]에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이다. 우리가 그러한 재료들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이 세계 역시도 그럴 것이다. 이렇듯 ‘다르게 보기’ 속에서 드러나는 그것이 진정한 현실이라는 것을 예술가는 어느 순간 발견해낸다. 이제 예술가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는 저녁 어스름 속에 떨고 있는 듯한 이 재료들로 작품을 만들어내고, 그런 식으로 이 유령에게 어떤 완전한 견고함을 부여한다. 이것이 창조가 늘 과거를 기억하는 작업인 이유이다.
Ghost Memories
지금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 있는 작가들은 다들 자신만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계를 예술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세계의 모순과 혼란에 직면하기도 하고, 유령처럼 이 지상에 발붙이고 사는 우리 모두가 겪는 번민과도 조우한다. 우리의 짧고 덧없는 인생에서 현실이란 모호하며, 생각은 때로 반대로 뒤집히고, 존재는 ‘세계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선지자의 지혜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시공간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심리적 왜곡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예술가들은 각자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 각자의 내부에 그 어떤 형상도 볼 수 없는 어둠의 구역이 존재한다는 생각에 맞서고 있다. 물론 심지어 이 어둠의 구멍 조차도 그들에게는 창작의 에너지가 되어줄 것이다. 이 전시는 두려움이나 문제의식 만큼 혼돈과 의혹도 함께 제시하고자 한다. 완성된 작품과 더불어서 진행 중에 있는 작품의 준비과정 데생과 아이디어 스케치들도 선보이면서 ≪Ghost memories≫전시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예술을 한다’는 크고도 어려운 과업을 어떤 식으로 소화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해답 보다는 문제제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운 양상으로 비추어질 이번 전시는 공간 속에 구축된 프로젝트이다. 이 전시는 서로 교차하는 다섯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공간에서 참여 작가들은 서로 다른 형식과 역할의 작품들로 여러 번 등장한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여전히 그 영향력 하에 놓여있는 이 ‘현대성’의 창시자 중 한 명인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 Charles Baudelaires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행으로의 초대’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이들 젊은 작가들이 만들어가는 현대성이 그 개성적인 얼굴을 점점 갖추어가는 중이다. 이번에 열리는 ≪Ghost memories≫전시를 통해 여러분은 그 복잡미묘함 속에 자리잡은 한국적 현대성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장 루이 쁘와트방/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