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2020년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 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로 진행된다. 13기 다섯 번째 릴레이 전시로 나미나 작가의『썬 크루즈 Sun Cruises』展이 오는 2019년 11월 28일부터 12월 08일 까지 1층 전시실과 윈도우 갤러리에서 개최된다. 또한 전시개막 행사는 2019년 11월 28일 목요일 오후 5시에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로비에서 진행된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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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준비를 하며 몽롱한 정신으로 뭔가를 뚝딱거리다 잠시 잠이 들었다. 익숙한 일이다. 다만 전시를 준비하며 한 여름은 가을이 되었고, 찬 바닥의 기운이 몸 안으로 침범해 어떤 기억들을 불러냈다는 점이 달랐다.
중학교 때 추리소설이나 판타지소설을 즐겨 읽었는데, 그 중 「신비소설 무」라는 판타지 소설에서 나온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항상 떠나지 않았다. 정확한 기억인지 모르겠지만, 동물을 학대하거나 좁은 우리에 가둬 자유롭지 못하게 하면 독이 쌓여 악귀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동물의 입장에서 얼마나 고통스럽고 인간이 미울지 상상했다. 치킨을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지만 먹을 때마다 치킨이 되어 생각한다. 그들에게 나는 나쁜 인간이로구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고양이와 함께 살 자격이 되는가? 평소 내가 생각하던 것이 영화 「혹성탈출」에서 뚜렷이 드러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의 애완동물이 되는 것. ‘반려묘’라는 표현도 입장이 바뀌면 끔찍하다. 그들을 내 집에 가두고 부모 형제와 헤어지게 만들고 마음대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행위들이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난 고양이와 10여년을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의 나는 이런 상황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개인이 세상의 통념을 바꾸기는 너무나 버겁고 힘들다. 그리고 내 무의식은 인간의 유전자를 타고 흐른다.
이런 기억의 파편들은 내가 폭력에 얼마나 무지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인지 스스로 너무나 잘 보여준다. 나뿐 아니라 주변을 둘러봐도 누구에게나 폭력성은 존재한다. 그것은 마음을 상처 입히고, 때론 죽게 만든다. 나는 죽은 적이 몇 번 있던 것 같다. 누군가를 죽인 적도 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살고 싶어 하는지 가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또 죽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죽어도 상관없다. 다만 고통스럽게 죽고 싶진 않다. 고통이 뭔지 아니까. 내가 느끼는 아픔과는 비교도 안 될 아픔이 세상에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이 아픔들은 자주 내게 전이되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폭력 속에 갇힌 존재들에 대한 것이다.
나는 유독 계란과자를 즐겨 먹었다. 어느 날, 동네 친구가 계란과자를 병아리로 만들어서 많이 먹으면 내가 병아리가 될 것이란 이야기를 해줬다. 나는 그 후로 계란과자를 멀리했는데, 내가 병아리를 죽이면서 심지어 병아리가 된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계란과자는 성장해서 나를 이 곳 미군기지가 있는 섬들을 찾아다니게 만들었다. 기억도 안날만큼 시작의 고리는 많지만, 결정적인 것은 강정마을에 가면서 부터이다. 나와는 연이 없을 것 같던 곳에 친구가 생기고 내가 잠시 머물 공간이 생기면서 그 곳의 일은 남 일이 아니라 내 일이 됐다. 이런 일들이 강정뿐만 아니라 다른 곳곳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내 발이 자연스럽게 그곳들을 내딛으며 걷게 만들었다.
이 경험으로부터 나는 무관심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을 찾아다니며 공감과 혼란 사이에서 외줄 타기 하듯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그중 미군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강정의 여러 상황들을 습관적으로 영상에 담았고 그것이 내 분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향점을 제시했다. 2016년, ‘섬들의 연대’가 활동하고 있는 ‘섬’ 오키나와에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이 동양의 군사 교통 요지가 될 만한 섬들에 행하는 제국주의적 폭력을 다룬 시리즈를 작업해왔다. 2018년, 괌을 다녀온 후 작업한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시리즈가 나왔다. 올해에는 필리핀을 다녀온 후 Clark, Angeles City, Pinatubo Mt.을 담은 와 Subic, Olongapo, Corregidor Island, Manila Bay를 담은 를 작업했고, 필리핀에서 느꼈던 혼란스러움을 적실하게 담으려 노력했다. 이번 두 작품에서는 이소연시인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영상 작업을 진행했고 진행 과정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협업했다. 장소(섬)마다 폭력이 드러나는 방식은 비슷하지만 느끼는 감정과 결과는 달랐다.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영상회화와 설치의 세부적인 변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그 변주들을 읽어 내주길 바라며 작업을 진행했다. 내 여정은 아직 멀었다. 이 여정에 계속 함께 고민하고 나아갈 사람들이 생기길 바란다. 관광지의 아름다움이 가득한 이 장소는 바로 시위 현장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어떤 장소이다. ■ 나미나
나미나는 세종대학교 회화과 서양화전공을 졸업하고,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대학원 석사를 수료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Sun Cruises>(신촌극장, 서울, 2019), <그 해안은 말이 없었다>(서교예술실험센터, 서울, 2018)등이 있으며, 주요 그룹전으로는 <InSight OnSite>(신한갤러리 역삼, 서울, 2019), <On going>(오픈스페이스 배, 부산, 2018), <POPUP - 나푼젤의 척추건강운동센터>(POPUP, 서울, 2017), <낯선 이웃들>(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서울, 2016), <강정-숨결-녹색(기획자, 참여 작가)>(수원시미술전시관, 수원, 2014) 등이 있다. “룰루랄라 제주올레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청년예술가생애첫지원 시각예술”(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최초예술지원 시각예술 창작발표형”(서울문화재단, 2019), “Shinhan Young Artist Festa”(신한갤러리 역삼, 2019)등에 선정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