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물화 또한 죽는다
STILL LIFE ALSO DIE
박 계 훈
Park gyehoon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2층 전시실+윈도우갤러리
2022. 07. 20. Wed - 08. 28. Sun
작가노트
정물화 또한 죽는다(STILL LIFE ALSO DIE)/ 물푸레나무의 기억
나는 예술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 이유는 예술이 항상 파국 뒤에 뒤늦게 도착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파국 이후의 시간과 기억을 탐구하는 작업은, 결국 완고한 이성과 사회적 폭력에 맞서는 예술적 무기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펼쳐지는 현실은 다 비슷해 보이지만 예술을 통해 보는 현실은 또 다른 버전을 보여 준다.
나는 예술의 눈으로 포착한 새로운 버전에 의미를 부여하고 기록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최근의 작품은 예술의 재현적 매체로서의 무기력함에 대한 생각의 소산이다. 재현할 수 없는 ‘기억의 현재화’라는 문제와 관련된 작업이다.
“폐광산과 깊은 숲속에 남아 있는 차가운 물이 엄청난 수의 주검들의 빈자리를
메워주고 있듯이 물푸레나무 가득한 숲은 우리들의 희미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숲속의 보이지 않는 불투명성과 오염된 흙더미가 바로 우리들의 현재적 기억이기 때문이다 .
“피는 말라버렸고, 절규하던 목소리도 땅속에 묻힌 채 발굴조사단에 의해 찍힌 몇 장의 사진만이 남아 있는”
숲속 곳곳을 떠돌면서 표면에 남아 있는 유골의 흔적으로만 짐작할 수밖에 없는 무더운 7월 여름밤의 공포를 포착하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망각할 수도, 망각해서도 안 되는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현재적 답변을 하고자 한다. 파편화된 기억들 퇴화한 시간의 지층들 사이를 오가면서 그것들의 중첩된 이미지를 연결하여 현재화 시키고자 한다.
작품에서 이미지는 비극의 장소를 떠도는 동안 현재와 과거 사이의 틈새들을 메우고, 잘못 인식된 우리의 기억을 정화하며 우리에게 ‘진실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작품의 표현방식은 장지에 오일 스틱으로 이미지를 중첩 시켜 드로잉 한다. 그리고 그 위에 이미지 일부를 오려내는 방식으로 작품이 제작된다. 보통 10점~12점 정도가 시리즈로 제작되며 영화의 쇼트처럼 연속성을 갖는다. 그것은 연속
장면을 통해 대상이 스스로 말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위해서이다. 기억의 부활은 영혼의 부활로 이어지고 영혼은 부유한다. 나는 예술적 성찰로 그 대상이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모험을 한다.
설치 방식은 나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대부분 작품이 공중에 걸리게 된다. 기억과 장소, 영혼과 공포를 현재화하는 과정에서 부유하는 이미지와 패널들은 작품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구체적인 언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