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02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16기 작가들의 입주기간 창작 성과물을 전시로 선보이는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입주작가 릴레이 프로젝트는 창작스튜디오 입주를 통해서 새롭게 도출된 작가 개인의 작업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일반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번 16기 작가는 총 18명이 선정되었으며, 2023년 2월까지 진행된다. ■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마지막으로 길을 잃어버린 적이 언제였을까?
길을 안내해주는 표지판, 손에 든 핸드폰, 전자기기, 길을 물어볼 수 있는 거리의 사람 등 주변의 환경은 길을 잃어버리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있다. 2년 전 떠난 여행에서 나는 완전한 이방인이자 타인의 자세로 탐험을 떠난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나왔다. 여행기간 동안 이동할 동선과 시간, 계획을 짜고 움직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처음 마음가짐 했던 탐구의 자세가 아닌 수동적인 여행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이후론 숙소에 핸드폰을 포함한 전자기기는 모두 놔두고 목적지는 세우지 않고 몸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하는, 방랑하는 여행을 시작했다. 가고 싶은 방향으로 이동하고 버스를 타고 내리고 싶은 곳에 내려 이동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갑작스레 맞이하는 예상치 못한 풍경과 환경, 사람들은 같은 장소에 있었지만 매우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주었다.
이런 여행을 지속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길을 잃게 되었다. 그곳은 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나 표지판도 있지 않았다. 산동네 같던 비탈진 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집들과 현관문,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계단들 사이사이로 길을 찾으려 애쓰던 내가 있었다.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비슷한 건물이 연속적으로 보이다가 어느 순간 길을 찾으려 하지 않고 그곳에서도 몸이 이끄는 곳으로 이동했다.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지금까지 해오던 나의 작업물의 방향, 다름을 느끼기 위해 떠났던 여행의 목적 등 많은 생각을 이곳에서 느꼈다. 연속적인 계단의 모습에서 이전에 해오던 작업의 방향이 느껴졌다. 쌓고 건축하며 해체하는 건축물의 모습과 많은 부분이 닮아있었다. 여러 잡생각이 떠오르던 차에 마지막 계단을 올라서고 나니 지평선의 양 끝이 안 보일 정도로 넓은 바다와 하늘이 보였다. 두 눈에 인공물이 아닌 자연의 모습만을 담아 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여행 중에 여러 번 봐왔던 바다의 모습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비현실적인 체험을 한 듯했다. 길을 잃어 꼬여있던 계단의 연속적인 풍경에서 갑작스레 맞이한 자연의 모습은 부초처럼 떠돌던 나에게 또 다른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미완성의 도심과 인간의 풍경을 주로 이어오던 나의 작업에서 바라본 완성된 자연의 모습은, 겹겹이 쌓여있던 계단처럼 연속된 시간의 겹침처럼 보였다. ■ 이덕영
이덕영은 목원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화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작가는 종이나 캔버스 위에 펜과 아크릴릭, 목탄, 먹을 이용한 드로잉을 중심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업을 진행하는 중간마다 드로잉을 이용한 스탑모션 영상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현재는 여행을 다녀온 후 느꼈던 바다의 물결과 도심, 버려진 건축물과 인간에 대한 비현실적 풍경에 관심을 두며, 파편화된 기억을 영상으로 제작 중이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표류여행》, ArtSpace128, 대전(2021), 《깎여진공간》, 이응노미술관 신수장고M2 프로젝트룸, 대전(2020), 《비만도시》, ArtSpace128, 대전(2019)가 있다. 단체전은 《튜링테스트: AI의사랑고백》, 서울대학교미술관, 서울(2022), 《페이지너머》, 대전창작센터, 대전(2022), 《사물의물결》, 갤러리밈, 서울(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