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17기 작가들의 입주기간 창작 성과물을 전시로 선보이는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입주작가 릴레이 프로젝트는 창작스튜디오 입주를 통해서 새롭게 도출된 작가 개인의 작업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일반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번 17기 작가는 총 14명이 선정되었으며, 2023년 12월까지 진행된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한 신문기자의 칼럼을 읽었다. 그 내용은, 중동지역을 여행하던 중 문득 젊은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한 소설이 떠올라 어느 상점에 들러 양탄자를 구매한 일에 대한 감상이었다. 그는 구매한 양탄자를 집으로 가져와 바닥에 두는 대신 벽에 걸어 장식했다.
작업을 하면서 한동안 나는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 어떤 그림은 쉽게 그려지기도 했지만, 어떤 그림은 그렇지 않았다. 버려지는 캔버스 천과 물감을 보며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애썼지만,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최근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다. 몇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계기가 되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 무심코 지나친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보고, 사진첩을 훑으며 이전과는 다른 관점으로, 마음에 와닿는 이미지를 선별해보았다. 기자에게 감명을 준 소설도 읽어보았다.
소설에서 양탄자는 주인공이 어느 나이 든 시인에게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대답 대신 받은 선물이었다. 주인공은 여러 인생의 굴레를 경험한 후에 양탄자의 의미를 깨닫는다. 양탄자는 인생의 무목적성을 긍정한다. 직조공이 양탄자를 짜면서 자신의 심미감을 충족시키려는 목적 외 다른 목적을 갖지 않았듯이, 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온갖 일들에 하나하나 집착하기보다, 나름의 무늬가 완성되어 가고 있음을 인정하면 된다는 것이다.
소설의 내용을 되뇌어 보며,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느꼈다. 직조공이 양탄자를 짜듯이, 기자가 그것을 바닥에 두지 않고 벽에 장식했듯이 나도 캔버스 프레임 없이 천을 벽에 고정하고, 양탄자의 날실을 연상하며 기름기 없는 짧은 붓 터치로 천의 표면을 더듬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서걱거리는 붓질의 느낌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그림은 나름의 무늬를 띄기 시작했다.■임윤묵
임윤묵은 단국대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2018년 첫 개인전 ⟪시간의 흐름 속에서⟫를 시작으로 여러 개인전, 기획전을 통해 주변 풍경이나 사물에서 그 이면을 발견하고 회화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2022년 오픈스페이스 배에서의 전시를 기점으로 주변의 사물과 내면이 맞닿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정서의 조화나 충돌에 주목하고 이를 다시 작업으로 환원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거의 정보가 없는 전시⟫ (부산현대미술관, 2022), ⟪일상이라는 몸⟫(청주 쉐마미술관, 2022), ⟪머리 위 파도, 가슴 밑 구름⟫(이목화랑, 2021), ⟪P는 그림을 걸었다⟫(d/p, 2021) 등 여러 기획 전시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