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17기 작가들의 입주기간 창작 성과물을 전시로 선보이는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입주작가 릴레이 프로젝트는 창작스튜디오 입주를 통해서 새롭게 도출된 작가 개인의 작업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일반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번 17기 작가는 총 14명이 선정되었으며, 2023년 12월까지 진행된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이따금, 눈에 힘을 풀고 무언갈 바라보면 그 장면이 나에게로 하여금 어느 지점에 내가 있는지 알 수 없게 만드는 풍경이 있다. 광활한 바다를 보아도, 무수히 떨어진 낙엽 사이를 지나도, 하다못해 손에 일부가 되어버린 시커먼 네모의 세상 속에도 있다. 그 공간 안에서는 무수한 정보와 이야기도 그저 표면에 불과했다. 어느 날, 그 표면을 눈 부릅뜨고 잡아채려고 했지만, 이윽고 방안은 진공의 공간이 되어 한숨으로 여백을 채워나가게 하였다. 남은 숨으로 다시 읊조리듯이 그림을 그려나가고 반복하다 보니, 그것은 하나의 파노라마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연속된 파노라마의 풍경 안에서 나는 무엇을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사실 그것은 무엇을 표명하려고 하거나 직선적인 서사를 만들어 가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잊혀진 과거에 대한 푸념이기도 하고, 기억에 대한 의심을 떨치려는 발버둥이기도 하고,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을 덜어내는 행위의 중첩일 뿐이다. 그 무작위의 배열과 여러 기호들이 모여서 이루는 이미지의 연속은, 의미 없는 후렴구가 되어버렸다. 나는 아무런 목적 없이 밖으로 나갔고, 눅눅한 낙엽이 쌓인 공원에 다다랐다.
빗물에 젖은 낙엽들은 더 이상 싱그러운 여름빛을 산란시키던 잎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이 원래 품고 있던 수분도 온데간데없고, 하늘에서부터 내린 수분으로 젖어들 뿐이었다. 별거 아니면서 처절한 그 풍경은 내가 이제까지 소모하고 버려진 이미지들의 표면과 흡사해 보였다. 실제로 존재하고자 함을, 이야기라는 순환체계로 증명했던 이미지(영화, 다큐멘터리, 연극 등)들은 공허한 껍데기만 남았다. 나는 그 껍데기 혹은 표면을 그저 실존하는 물리적 개체로 인식하였고 내가 마주했던 이야기들의 실마리만 남긴 채 젖어 들었다.■김동우
김동우는 충북대학교 조형예술학과를 졸업(2021)하였다.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판타지적인 생명체나 풍경을 회화작업으로 풀어낸다. 주로 일상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뉴스 등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한 뒤, 상호 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하여 단편적 회화 이미지로 조합한다. 작가는 별개의 이미지들 사이에 생기는 어색한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꾸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를 통해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가 생성되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지와 서사의 관계 속에 감춰진 유연함과 신축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질문한다. 주요 그룹전으로는 《내일의 미술가들》 (청주시립미술관, 청주, 2022), 《불안정한 가능성》 (쉐마미술관, 청주, 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