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17기 작가들의 입주기간 창작 성과물을 전시로 선보이는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입주작가 릴레이 프로젝트는 창작스튜디오 입주를 통해서 새롭게 도출된 작가 개인의 작업 방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일반 관람객에게 소개하는 전시이다. 이번 17기 작가는 총 14명이 선정되었으며, 2023년 12월까지 진행된다.■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1. <버 burr>는 건축 자재를 생업으로 다루는 기술자들과 협업 중, 그들의 언어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채집한 단어이다. ‘버’는 금속의 홀을 가공할 때 발생하는 부적합, 돌출된 부분을 가리키는데, 현장에서는 다양한 자재의 작업 시 실수로 발생하는 여러가지 이물질을 쉽게 말하기도 한다.... 어떤 현장에서든 시행착오와 임기응변에 따른 제스처가 작업자의 각자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버의 제거 여부와 방식은 작업자의 그날 기분, 작업 환경 혹은 날씨 등에 달려있다. ‘버’를 실수나 불량으로 여기지 않고, 작업의 모든 것을 아우르고 각 작업군마다의 다른 무언가와 비논리적으로 연결하는 매개체로 갖는다.... ‘버’를 나의 언어로 다시 말하자면; 원치 않는 재료의 조각이고, 불가피한 잉여 부분, 미해결 자체지만, 그래서 유일하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2. 모든 것이 어떻게 사회적인 시작을 갖는지 생각한다.... 모든 재료는 물성과 함께 형태 언어, 즉 고유한 온도가 있고 그에 따른 특정 용도와 특정 사용 방식이 있다. 잘못된 방식으로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재료가 물질로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의 기대를 훼방 놓는 것이고, 일종의 사회적 배신을 하는 것이다. 재료의 물질성을 모욕한다는 생각으로 다루면서 재료의 경계선을 착취한다... 재료를 가볍게 취급하는 방법, 우연히 발견하여 해결해야 하는 현상, 삭제와 변경의 자유, 또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취급하는 등 입체를 다른 감각으로 구현한다.
3. 신체 내부와 외계와의 경계를 이루는 부위에서 일어나는 접촉, 진동, 압력 등과 같은 물리적 힘과 관련된 피부 감각이 전시의 주된 감각이다. 어느 날 방수나 코팅, 단열, 마감을 위한 액상의 건축 재료가 작업실의 온도나 습도에 따라 눌어붙거나 끈적거리고, 바사삭 부서지거나 굳게 굳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들은 촉각적일 뿐 아니라 후각적으로도 다른 정동을 구현했는데, 재료가 굳어 다른 물질과 결합 했을 때 건물의 악취가 아닌 신체의 악취를 풍긴다는 것이다.... ;상처, 염증, 수포, 피지, 종기, 각질, 돌기, 주름, 두드러기나 털, 딱지, 고름, 핏자국 등을 갖는, 각종 노동과 갈망의 행위로 생긴 병든 피부 조각들이 세워진 몸체에 꿰매어지고, 새겨지기도, 촘촘하게 박히고 들러붙거나, 내부에 은밀하게 부착되고, 혹은 간신히 붙어 너덜, 달랑거리게 된다.
4. 독일에 오래 거주하면서 작업/ 생활 언어를 바꿔야 했다. 이방인으로서 언어 사용은 굉장히 제한적인데, 미대생, 젊은 외국인, 동양인 여성으로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제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현지에서보다 오히려 자유롭게 느껴진다. 귀국 후 언어를 다시 한국어로 바꾸고, 또 독일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 두 언어가 노동의 수단이 되어서 더욱 그렇다.
4. 1. kiss my ass라는 문장은 아부 혹은 모욕으로 쓰인다. 이러한 단어나 문장이나 단어가 갖는 둘 이상의 뜻 중에서 그중의 하나를 ‘버’로 여기는 방식을 즐겨왔다. 문장의 쓰임에서 알 수 있듯 엉덩이와 항문에 대한 인식은 엉덩이/항문을 섹슈얼한 영역과 동시에 혐오스러운 신체 부위로 해석하는 데 기반한다.... 신체 기관은 형용사(너무 작은, 중간의, 너무 큰)에 의해 이미지화되고, 동사(가다, 오다, 끌다…하다)에 의해 실행된다.
5. 특별히 이야기되지 않았던 여성 배설에 대해 생각한다. 여성 배설이 사회 질서 내에서 갖는 미스터리한 양면성에 대한 생각인데, 여기에는 한편 코미디의 전형적인 소재가 되어 이상한 폭소를 부르는 남성 배설 코미디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버’를 ‘여성 배설’과 연결하여 건축에 대한 양가감정을 기반으로 ‘건축’을 ‘버’로 범벅하고,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배설 코미디’의 방법과 방식을 훔쳐옴으로써 결과적으로 건축과 남성 배설 코미디를 모두 좌절시키고자 했다.■홍혜림
홍혜림은 ‘ 노동’과 ‘갈망’을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과 동시에 자업의 키워드로 갖고 건축 자재를 주재료로 입체, 설치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다양한 매체 경험과 건축 기술자와의 협업 등을 토대로 가정에 자리 잡고 있는 사물과 이미지의 수집으로부터, 가족 구성원과 자재의 중간 유형으로, 또 자재자체로서의 몸으로 조금씩 이동해 왔다. 최근에는 촉각을 주된 감각으로 건축 현장에서 잉여와 부속물, 미해결 부분을 가리키는 ‘버 burr’ 라는 개념을 갖고 노동을 단순 복제 행위가 아닌, 갈망의 다양한 표현 방식과 결과로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