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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GJU MUSEUM OF ART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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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거기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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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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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김용선
  • 전시기간 2024-09-19 ~ 2024-10-02
  • 전시장소 1층 로비 디지털 아카이브, 2층 전시실

전시개요

2024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릴레이 프로젝트 개인전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18기 입주작가 13명이 입주기간 내에 제작한 창작 성과물을 전시로 선보이는 릴레이 프로젝트를 202481일부터 1225일까지 7회차로 나누어 진행한다. 본 전시는 릴레이 개인전 3회차로 김용선 작가의 개인전 그는 거기에 없었다.이다.

 

 

#탄생

 

202010월부터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임의 번호로 부여되지만, 그 이전엔 성별로 구분되는 한 자리 숫자와 네 자리 의 지역번호, 출생신고 등록 순서에 따른 숫자 한자리, 앞의 열두 자리를 조합하여 산출되는 마지막 검증 번호 한자리까 지 총 일곱 자리 번호로 구성되었다. 한 지역에 오랫동안 거주한 가족 같은 경우엔 가족끼리 또는 친구끼리 뒷자리가 비 슷한 경우는 봤지만 내 경우엔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아버지의 생년월일과 같다.

 

이 우연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다시 한번 카메라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버지는 내게 늘 카메라를 사주고 싶 어 했다. 미안하다고도 했다. 그건 아버지의 술주정 레파토리 중 하나였다. 나는 순전히 아버지의 푸념이 듣기 싫어 아버 지에게 삼십만 원을 받아내었다. 어쨌든 단돈 삼십만 원으로 아버지는 응어리를 풀고 나는 더 이상 푸념을 듣지 않아도 되 니 서로에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 카메라를 사용한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였다. 어차피 그 카 메라는 아버지의 푸념을 막는 것만으로도 용도를 다했으니 그걸로 촬영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 간 하지 않은 일과 버리지 못한 물건들에 대해 생각했다.

 

도무지 아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어머니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잠시 허공을 응시하던 어머니가 내놓은 대답은 생 각보다 명쾌했다.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버지가 부모와 형제로부터 엄하게만 키워져 사랑하는 법을 모른다고 했 다. 그래도 둘째인 너는 아주 아꼈다고 했다. 나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과거에 함몰되지 않고 지난 일 을 생각하는데 오늘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야 아버지의 아버지부터 내려오던 고리를 끊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 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버지가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란 그늘은 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자리 잡은 아버지의 생년월일처럼 내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언젠가 아버지는 내게 자신이 챙겨놓은 옛날 앨범을 가져가라고 했다. 아버지에게 어머니한테 왜 그랬었냐고 물었을 때였나. 아니면 집으 로 돌아가는 자신의 뒷모습을 지켜보라고 했던 날이었나. 아버지는 옛날 가족 앨범 속 각각의 순간마다 글을 좀 남겨놓았 다. 나는 그게 아버지의 유언이라 생각한다. 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용선 탄생.’

 

 

 #비탄생

 

저는 그 존재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아직도 정하지 못했습니다. 언젠가부터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단 생각 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나의 탄생이 있기까지 몇 번의 실패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실패라는 건 순전히 '우리'의 관점입니다. 형제라고 하기엔 그건 순전히 제 관점이고 그 존재가 저보다 먼저 세상에 나왔다면 저는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렇다고 ''라고 딱 잘라 부르기엔 어머니의 선택이 언제쯤이었는지, 그리고 어머니의 선택이 아니더라도 그 존재가 언제 어떻게 됐을지도 확신할 순 없는 일이니까요.

 

'이제 네 새끼를 낳나 봐라.' 날아오는 아버지의 주먹에 대한 어머니의 대답이었습니다. 형을 낳고 애가 들어선 적이 몇 번 있었으나 입덧이 심했던 탓에 금세 알아채고 모두 아이를 거부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생긴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 를 가지셨을 땐 그렇게 심했던 입덧도 일절 하지 않았기에 단순히 생리 주기가 틀어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혹시 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형을 비롯하여 그 이전까진 입덧이 무지 심 했으니 딸이면 달라도 뭔가 다를 거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낳기로 결심했습니다. 딸이 생긴다면 집안 분위기도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역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존재를 막연하게 '우리'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 역시 순전히 제 관점일지 모르겠습니다. 그 존재는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고 저는 세상에 나왔으니 '우리'라고 묶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저는 그 존 재와 감정적으로 유대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유독 입덧이 심해서 임신 사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던 어머니가 저를 가 지셨을 때 입덧하지 않고 임신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사실 어머니에게 먼저 자리 잡았던 그 존재들이 알 려준 생존 방식 같은 건 아니었을까요. 그렇기에 가족에 있었던 일들을 기억하는 건 제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 생각됩니 다. 제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그저 나의 시간을 그가 존재했을지 모르는 그 시간 사이에 포개어 놓는 것뿐입니다. 이건 부모에 대한 우리의 대답입니다.

 

작가소개

김용선은 자전적인 이야기 바탕으로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 글을 이용하여 작업하고 있다. 가족의 서사를 풀어내는 것은 스스로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작업을 통해 우리의 삶 앞에 주어진 질문을 찾는다.

 

부대행사

개막식 202년 09월 19일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