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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Kim Yu Kyung : 경계 위의 충돌 흔적 Traces in the border confli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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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 전시기간 2014-09-25 ~ 2014-10-05
  • 전시장소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개요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2014년 제8기 입주작가들의 세 번째 릴레이 전시를 개최한다. 전체 입주작가 홍보를 위한 프로모션 전시로서 이전 작가들의 작품발표 워크숍을 실시하고 작품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를 이끌어낸 성과보고전이다. 이번 네 번째 릴레이 전시는 그림이라는 회화적 요소를 다루는 김유경, 박해빈 두 여성 작가가 작품을 선보인다. 두 작가 모두 풍경을 소재로 하고 있는 점에서 닮아 있으면서도 개인의 내면의 세계와 풍경의 형식에 접목한 것도 맥을 같이하고 있다. 김유경작가는 한국화 특유의 묵의 농담을 찍은 점묘화법으로 풍경을 표현해 독특한 질감과 풍부한 톤을 전달한다. 풍경들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오래된 흑백사진 같은 뿌연 기법으로 제작되어 작가의 깊은 서정성을 극대화한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경계 위의 충돌 흔적
 
 김유경의 최근작품에서 하얀 종이위의 검은 얼룩들은 무엇인가의 묘사이기 이전에 어떤 심리적 사건의 흔적으로 다가온다. 불안과 매혹을 동시에 야기하는 이 어슴푸레한 형상들은  그 사이에 펼쳐진 무한한 회색의 계열만큼이나 모호하다. 단색조의 그림들은 연한 먹색인 회색조의 블랙부터 완전히 진한 카본블랙까지에 걸쳐 있다. 그림에는 허름한 집들이 많이 등장한다. 자아의 상징이기도 한 집은 빈집처럼 외롭고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집 주변을 에워싼 공기나 나무들 역시 자아(집)과 같은 상태이다. 주체와 객체는 서로의 경계를 허물고 상호조응 한다. 동양화 재료로 그려진 김유경의 작품은 블랙이 주는 우울함과 불길함, 은폐와 신비 등이 최대한 발현된다. 여기에서 먹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기운이다. 작품 [김제 어느 창고]나 [공원]을 보면, 집 위에 빛과 나무 실루엣이 뒤섞여 생긴 얼룩덜룩한 형상들은 보이는 불길하면서도 신령한 기운을 뿜어낸다. 아지랑이, 안개, 아른거리는 구름 같은 것은 빛과 어둠의 경계를 교란한다.  그것들이 집이나 나무를 감싸고 있는 풍경들은 초자연적이다. 작품 속의 나무들은 어수선한 머리칼을 한 채 우울하게 웅크린 누군가의 초상처럼 보인다. 풍경에서 발견되는 고립된 집, 나무는 섬, 무덤, 감옥 같은 장소로 전이되며, 도시에 옮아왔을 때도 음침한 기운은 역력하다. 어디에도 사람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람은 풍경에 흡수되어 버렸다. 따라서 모든 것이 사람이다. 좀 더 범위를 확장하자면 만물에 정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다. 흑백 사진작품은 보다 분명하게 위기의식을 전달한다. 여기에서 작가의 분위기 연출자의 역할은 보다 적극적이다. 작품 [풍경]에서는 45도 각도의 급 비탈 옆의 작은 집이 위태롭게 있으며, 작품 [어느 교회의 붕괴]에서는 교회의 첨탑이 하늘과 뒤섞이며 뭉개진다. 작품 [나이트메어], [난파]에서는 재난이 암시되는 풍경을, 작품 [안개먼지 연구]는 실체가 불분명한 존재에 대한 탐색을, 작품 [long way]에서는 소실점 너머로 모든 것이 급격하게 사라짐을 표현한다.
 이러한 작품 목록들은 이제 30세가 된 젊은 작가의 고딕취향을 반영한다. 실제로 작가는 히치콕의 [새]나 스티븐 킹의 [안개] 같이,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스릴감 있게 표현한 감독들을 좋아한다. 과도기의 젊은이들은 강렬함과 모호함을 동시에 좋아한다. 현실보다는 환상을, 그것이 굳이 현실이라면 환상적인 현실을 좋아한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면 환상이라는 현실 속에 산다. 그것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기간이 무한정 연장되면서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서의 심리상태를 반영한다. 예술가는 이러한 젊은이와 유사하다. 매번 새롭게 태어나야 하며 영원히 성장 중인 그는 어딘가에 확실하게 속하는 순간, 또는 속해있다고 믿는 순간 작가로서의 삶은 흐지부지된다. 소속이 주는 소소한 의무와 권리를 절대적 자유로 대치시키려는 예술가는 불확실한 상태를 평생 간직한다. 그래서 그들은 ‘저주받았다’고도, ‘소외되었다’고도 말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소수자의 입장은 이제 다수의 운명이 되었고, 자신도 모르는 새에 선지자가 되었다. 그들의 입장과 비전은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2013-14년 사이에 몰두한 주제는 ‘고스트, 유토피아’이다. 유령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떠도는 불확실한 존재이며, 유토피아란 그 어원이 말해주듯이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렸던 작품 [난파]처럼, 유토피아를 향해 항해하던 배가 난파된 유령적 상황이 있다. 작품들은 경계 위의 존재, 그리고 부재의식을 맴돈다. 허름한 시골풍경은 과거를 연상시킴과 더불어 미지의 장면으로 도약한다. 그것은 과거와 미래는 있지만, 현재는 없는 불확실한 존재를 반영한다. 흔들리는 시공 속에서 억압된 것이 귀환한다. 작업은 스케치 없이 시작한다. 수없이 중첩하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부드러운 톤의 변화는 사라짐과 드러남의 유희를 보여준다. 작가가 사용하는 기법 중에는 한지를 사포로 문지르는 것이 있는데, 이를 통해 무엇인가 묻혀 있던 것이 드러나거나 있던 것이 지워진다. 
 [섬] 시리즈에서는 마을이었다가 댐건설로 수몰된 장소인데, 비극적으로 묻혀버린 기억을 호출하는 풍경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중첩시킨다. 매스미디어에서 전해지는 파국적 사건 또한 망각과 기억이 교차한다. 정보는 대량 소비되기 위해 대량 생산되며, 이러한 유통과정을 거친 후에 폐기처분된다. 작가는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모두들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들춰본다. 작가는 치유되지 않은 채 시간에 떠밀려 봉합되어버린 것들을 회귀시킨다. 김유경의 그림은 으시시함과 신비를 오고가지만, 경악할만한 괴물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한 사건의 구체적 묘사도 없다. 그러한 느낌을 주는 대상이 부재함, 더 나아가 공허함이 고요한 긴장을 야기한다. 프로이트는 [억압, 증후, 그리고 불안]에서 불안에는 애매모호하고 대상이 없다고 말한다. 그것이 공포와 다른 불안의 특징이다. 불안은 한편으로는 외상에 대한 예상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완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그 외상의 반복이다.
프로이트는 모든 불안의 원형은 모체로부터 최초로 분리되는 출생체험이라고 한다. 모태 속에서 균형을 이루던 태아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와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다. 모든 새로운 태어남에는 원형적 상처에 대한 기억이 있다. 예술작업 또한 그러한 새로운 탄생에 버금가는 사건이기에, 작품에는 그 흔적이 새겨진다. 작가는 작업이라는 과정을 통해 거듭되는 새로운 탄생이라는 위기에 자아를 놓는다. 자아는 그 괴로운 경험을 단지 조짐으로만 제한하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활발하게 위험상황을 상상한다. 여기에서 상처-기억-회귀-불안은 일련의 인과 고리를 형성한다. 이러한 불안감은 특정한 대상이 부재하기에 거기에 맞설 수도 피할 수도 없다. 김유경의 작품에 편재하는 막연한 불안감과 위기감은 꿈인지 생시인지 몽롱하게 다가온다. 위험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불안은 위험사회인 현대에 더욱 팽배하다.
 김유경의 작품에는 불안을 야기하는 구체적 대상은 없으나, 작품은 벌어진 상처처럼 곳곳에 틈을 벌리고 있다. 기억이 망각을 전제로 하고, 회귀가  억압된 것을 전제하듯이, 틈이란 경계로부터 발원한다. 단색조의 작품들은 하나의 정서로 물들어 있지는 않다. 빛과 그림자로 이루어진 풍경은 아늑하고 차분해 보이기도 하다. 어떤 유토피아적 풍경이 디스토피아로 돌변하는 것은 아주 작은 단서에 의한 심리적인 사건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경계면들은 미/숭고, 상징/상상, 친숙함/기이함, 정상/이상 등이다. 김유경의 풍경은 먼저 미와 숭고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칸트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감정에 관한 고찰]에서 두 가지 감정의 상태인 숭고함의 감정과 아름다움의 감정을 구별한다. 그에 의하면 구름위로 솟아오른 눈 덮인 봉우리의 산악풍경이나 성난 폭풍에 관한 묘사 혹은 밀턴의 지옥에 관한 묘사, 그리고 신성한 숲속의 키 큰 너도밤나무와 쓸쓸한 그림자는 숭고하다.
반면에 화단과 낮은 산울타리 그리고 그림 속의 잘 가꾸어진 꽃들은 아름답다. 밤은 숭고하며 낮은 아름답다. 숭고함은 감동시키고 아름다움은 매료시킨다. 그러나 칸트는 숭고함의 감동이 아름다움의 감동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점, 그리고 아름다움에서 비롯한 감동의 수반이나 변형이 없다면 숭고함의 감동도 사라져버리고 그 즐거움 또한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덧붙인다. 커피와 프림이 섞여드는 듯한 부드러움이 없다면 김유경의 그림은 마냥 거칠고 황량하기만 할 것이다. 매혹은 불안만큼이나 부드럽게 스며든다. 두 번째 경계면은 상상과 상징의 관계이다. 로즈메리 잭슨은 [환상성]에서 상상의 역할은 독단주의의 토대가 되는 상징질서, 즉 주체 안에서 그리고 주체를 통하여 수립되고 지배적인 의미화체계가 재생산되는 상징질서를 해체하는 것에 있다고 지적한다. 환상적인 것을 도입하는 것은 친숙함과 안락함과 친밀함을 낯섦과 불안과 기괴함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타자이며 은폐된 어떤 것의 암흑세계, 즉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것에 한정된 틀을 벗어나고 언어와 시선의 통제에서 벗어난 공간을 도입하는 것이다. 현실의 확실성을 변형시키는 환상은 불안이나 공포와 밀접하다. 현대의 환상성은 고딕부터 현대의 공포영화에 이르는 계보를 가진다. 로즈메리 잭슨에 의하면 환상은 이상주의적이다. 그것은 절대성을 향한 욕망, 절대적 기의, 절대적인 의미를 향한 욕망을 표현한다. 환상적인 양식은 사실주의적인 것과 경이로운 것 사이에 위치하며,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좌초되어 있다. 작가는 상상계와 상징계 사이의 관계를 변형시킴으로서 환상은 현실에서 침묵당하고 은폐되었던 존재를 드러낸다. 김유경에게 유령은 잘 보이지 않고 명확히 규정될 수 없는 타자이며, 디스토피아는 경계의 교란에 의해 제자리를 벗어난 것들이 주는 공포와 활기를 말한다. 
 세 번째 경계는 친숙함과 기이함 사이에 있다. 가장 친숙한 것에서 기괴한 것을 발견한 이는 프로이트이다. 그는 기괴함을 종족적이거나 개인적인 진화과정에서 억압되어야 했거나 극복되어야 했던 원초적인 정령숭배, 또는 유아기의 나르시시즘과 같은 마음의 초기상태의 회귀라고 말한다. 친숙함/기이함은 정상/이상의 범주로 치환될 수 있다. 정상과 이상 간의 경계의 교란은 그로테스크한 효과를 자아낸다. 필립 톰슨은 [그로테스크]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기쁨과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것에서 맛보든 재미는 일단 비정상의 정도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친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포로 바뀐다고 본다.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반응이 엇갈리는 가느다란 경계선이다. 볼프강 카이저는 [예술과 문학에 있어서 그로테스크]에서 그로테스크는 낯설어진 혹은 소외된 세계의 표현이라고 정의하면서, 그로테스크는 근본적으로 양면적인 것, 대립되는 것들의 격렬한 충돌이라고 본다. 김유경의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그로테스크의 주된 특징은 갈등의 미해결이다.
화면 속에서 이런저런 장치들로 고양된 긴장은 해소되지 않는다. 궁금증은 촉발되지만 답은 없다. 그것이 서사라면 그것은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이다. 이 환상적 그림들은 추상만큼이나 재현에 기댄다. 양자는 음화와 양화의 관계를 가진다. 완화된 채이기는 하지만, 현실이라는 기준은 있다. 현실원칙과 쾌락원칙이라는 이질적인 것이 충돌하는 장이다. 충돌은 출몰을 야기한다. 여러 가지 경계 위의 게임은 모순과 역설어법으로 유지된다. 여기에서는 본질보다는 관계가 중요하다. 본질은 없다. 작가가 다양한 경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어둠이나 악이 아니라, 부재와 공허이다. 텅 빈 집, 자연, 도시가 주는 박탈감을 벗어나기 위해 그 미묘한 연출들이 필요했는지 모른다. 그러한 텅 빔은 외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자아 또한 안전하지 않다. 그녀의 작품에 깔린 근본적 불안은 없음이 있다는 것이다. 흑/백으로 이루어진 김유경의 그림에서 하얀 공백은 블랙만큼이나 불안을 자아낸다.
 근본적인 부재라는 직시할 수 없는 진실을 가리기 위해 뭉게뭉게 피어올린 장막은 다채롭다. 그러한 근본적인 동기가 다양한 기법은 낳았을 것이다. 기법은 현실을 장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식에 의해 지탱되는 지배적 현실을 침식하기 위한 것이다. 제자리를 벗어나곤 하는 선과 색이 이러한 지향을 받쳐준다. 부드러운 경계면은 가장자리를 침식한다. 먹은 스며들고 새어나오고 피어오르며 휘발된다. 최근에는 잘 섞이지 않는 기름과 목탄을 섞어서 입자를 떠돌게 하기도 한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계조의 무채색은 순수/오염을 나누면서 유지되는 사회질서라는 기준으로 본다면 불순하다. 먹은 마치 체액처럼 ‘안이자 바깥이며,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고, 독립적이면서 흩어져’(크리스테바) 있다. 김유경의 그림에서 발견되는 현실/상상/상징 사이의 불안한 경계선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가장자리를 건드리면서 특유의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은 우리의 상처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상기시킨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김유경 KIM Yu Kyung은 동양화가 가진 진지한 언어를 통해 익숙하면서 낯설음, 그리고 두려움과 같은,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허구가 아닌 우리의 마음이 진정으로 거주할 수 있는 실체 즉 이상향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조형적 실험을 보여준다.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2014년 팔레드서울과 2013년 갤러리 도스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서울과 수원, 부산의 여러 단체전에 참여하였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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