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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ONGJU MUSEUM OF ART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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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혜Paik In Hye : 시간을 추억하다Remember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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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명
  • 전시기간 2015-09-10 ~ 2015-09-20
  • 전시장소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전시개요

백인혜의 검은 풍경

 2015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는 입주기간동안 작품성과물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선보이는 아티스트 릴레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티스트 릴레이 전시는 스튜디오 전시장에서 그간 작업했던 결과물에 대한 보고전시로 해마다 작가 자신의 기존의 성향과 틀에서 벗어난 새로운 감각과 역량을 보여주는 전시로 개최했다. 이에 올해 9기 작가들의 전초 전시로서 선보였던 ‘워밍업전’은 어떻게 개개인의 코드와 미적 언어들을 하나의 전체성으로 풀어낼 것인가가 관심이었다. 그 후 작가들의 작업을 풀어내는 워크숍을 통해 그간의 작업과 앞으로의 방향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에 좀 더 개인 작업에 집중하는 릴레이 전시 프로젝트는 체류하는 동안 기존 자신의 방법론을 어떤 방식으로 의미를 새로이 전달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개별 스튜디오에서 전개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들의 기록과 실험적인 날 것의 이미지, 불완전한 예술적 의미, 모호하고 불편한 상황들을 전시장에 잠시 머무르며 그런 첨예한 문제들을 관람객과 나눈다. 이에 현장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우리에게 현대의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통해 동시대의 미감에 대해 교감을 나눈다.

 이에 네번째 릴레이 전시로 백인혜 작가의 전시를 개최한다. 백인혜의 작업들은 독특한 그리기의 방법론으로 출발한다. 그녀의 회화는 언뜻 보면 화선지에 검은 먹으로 그린 수묵화를 떠올리게 한다. 점점 화면으로 다가서는 순간 그윽한 시선은 화면의 곳곳을 훑으며 지워진 화면을 여행케 한다. 어느새 일정거리에서 느꼈던 나무, 숲, 바다의 풍경들은 표면 속으로 사라지고 줄기차게 벗겨낸 생채기만 남겨져 있다. 이렇게 지우고 그리는 이미지들, 백인혜식 회화 제작과정은 이렇다. 캔버스에 흑연과 콩테들로 무수히 검게 그려내고 이후 완성되어진 찰나에 지우개를 붓 삼아 그 표면을 지우는 혹은 그려나가는 것으로 어떤 영토를 점유하는 듯하다. 백인혜의 지워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어쩌면 모든 그림을 빽빽이 퍼붓고(욕망의 행위) 그 위를 겸허하게 지워나가는 방법(성찰의 행위)으로 읽혀진다. 이 지우면서 그리는 회화는 어떤 목적과 논리로써 대상을 재현하겠다기 보다는 몸이 가는 그 자체의 욕망의 대상들을 그려냈다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 모든 가득한 욕망을 채우고 다시 그 욕망의 덧없음을 막다른 꼭지점으로 몰아넣고 그 지점에서 다시 돌아 내려오는 형국의 환희 퍼포먼스다. 백인혜의 반복된 그리기 혹은 채우는 행위는 몸의 장이면서 그 잠재적인 특이점을 기록하는 가능태의 장이다. 물론 백색의 빈 캔버스도 잠재적인 장이지만 백인혜의 장은 어떤 욕망을 맛본 지점에서 다시 그 욕망을 갈기갈기 길을 내고 숲으로 혹은 풍경으로 해체하는 지점에 그 쾌감이 있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와 검게 그려진 화면은 지우기라는 행위를 통해 무채색의 톤을 만들고 그 톤들은 어느 일정의 풍경으로 펼쳐놓아 어느덧 그림이라는 표정으로 완성된다. 이런 무수한 몸적 반복들은 어떤 재현적 권위의 묘미를 불러일으킨 다기 보다는 그저 반복의 행위와 덧칠된 시간의 반복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작업해온 이 검은 생채기, 지움의 회화는 그녀가 가장 첨예하게 예술이란 혹은 그리기란 무엇인가를 관객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 물음은 또 자신에게 던져져 그 의미를 포착하는 것에서 작업의 지속성을 찾는다고 볼 수 있다. 화면에 무수히 반복된 촘촘한 질감, 물질성, 질서, 마주된 욕망을 찾아내고 다시 질문해 완성된 정의를 해체하려는 의도로 보여 지기도 한다. 다시 화면으로 돌아와 백인혜는 무수한 안과 밖, 시간과 무시간, 스스로 그러한 자-연스러움을 자신의 예술행위로 탐구하며 그리기-지우기-다시그리기를 유희한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작가노트

 지우개로 창을 그린다고 하였다. 나에게 있어 창을 그린다는 것은 곧 빛을 그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을 열면 안과 밖의 공기가 통하여 합쳐지기도 이동하기도 한다. 이런 공기의 운동감은 우리의 생활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에너지화되어 만들어진다. 이 에너지는 밀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한쪽의 밀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바람을 형성한다. 즉 창을 만들고 창을 여는 행위로 바람을 형성하게 되고 우리는 그곳에서 자연스럽게 호흡한다. 나에게 그런 ‘호흡’ 을 지우개로 지우면서, 혹은 그리면서 표현하는 것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호흡하며 세상을 바라보고, 이야기한다. 지움의 흔적들로 공간이 확장되며 그렇게 확보된 공간은 통로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그러므로 오늘을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성을 확보하게 된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은 오늘과 함께 있다. 과거의 기억과 경험은 수많은 연결 고리로 엮어 있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러난다. 기억은 자신에게 고유한 ‘시간의 공간’ 안에 특수한 경우들을 보존하고, 그런 가운데 이 경우들을 구별되는 경우들로 재구성한다. 즉 기억은 시간으로 되어있는 저장소 같은 공간이다. 기억은 막연하게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기억 속으로 들어가면 상상력을 통해 재구성된다. 과거의 시간은 현재 바라보고 있는 창을 통해 함축되고, 재구성된다. 그리고 과거에서 느꼈던 경험은 현재까지 이어진다. 현재에서는 지우는 행위의 반복은 과거의 수축된 시간을 펼치며 표현하는 것과 같다. 언젠가 그리고 어디서 바라본 것 같은 창에 대한 경험은 곧 상상의 창으로 표현된다. 과거의 시간을 추억하며 현재의 창으로 창조되고 있지만, 창을 만든 후 다시 창을 바라보았을 때에는 과거에 그려진 창을 바라보게 된다.

창의 안쪽은 주체가 서있는 위치에 따라 바깥쪽으로, 또는 안쪽으로 생각된다. 주체가 서있는 곳을 대부분 안쪽이라 하면, 창 너머의 반대쪽은 바깥쪽이 된다. 이처럼 그리는 것과 지우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같은 의미로 생각되기도 한다. 흰 종이에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라 검은 종이에 무엇을 그려서 표현할 지를 생각한다면 지우개는 분명 그리는 도구가 된다. 어둠을 지워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창은 무한한 공간을 창조한다. 창 앞에 서서 창에서 들어오는 빛을 조금씩 찾아가며 그린다. 빛을 찾아가는 과정은 궁극적으로 창을 바라보기 위함이고, 창을 바라보는 행위는 세상과 숨쉬기 위함이다.

작가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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