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한 기울임 Slightly inclined ears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은 2018년 6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2018 대청호미술관 전시지원 공모’에 선정된 권병준×양지원, 김서량×신이피, 이예린의 전시를 지원하는 <미세한 기울임_Slightly Inclined Ears>展을 개최한다. ‘2018 대청호미술관 전시지원 공모’는 동시대 미술 현장을 가늠할 수 있는 참신하고 실험적인 전시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간 진행해온‘대청호 프로젝트 공모’의 ‘자연과 환경’ 이라는 한정된 공모주제에서 벗어나 자유주제의 전시공모전으로 운영하였다. 이에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 심의를 거쳐 공모에 선정된 총 3팀의 작가의 그간 쌓아온 예술 담론들이 대청호미술관 각 전시공간에서 독립적으로 펼쳐지는 동시에, <미세한 기울임>이라는 명명 아래 하나의 전시로써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기획되었다.
<미세한 기울임_Slightly Inclined Ears>은 이번 전시를 아우르는 명칭이기도 하나, 다른 한편으로는 관람자에게 행위를 유도하는 지시문이자 제안이다. 이번 공모에 선정된 3팀(명)의 전시는 시각예술에서 가장 오랫동안 몰두해온 시각적 감상보다 주로 ‘소리’라는 청각적 매체가 작업의 주요 형식으로 수용하여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관객과 함께 상호소통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 전시는 ‘소리’라는 매체가 시각예술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확장되고 예술적 감각으로 작동하는지 시사하며 관람의 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우리는 주로 시각에 의해 사물을 인식한다고 하지만 그 외의 감각들을 통해서도 사물과 현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얻고 있다. 특히 시각의 힘이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들- 깜깜한 밤이나 시야에 벗어난 공간에서의 물체나 활동 현상에 대해 짐작하거나 인지할 때 우리는 청각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시각예술 안으로 침투한 미디어 매체는 작품과의 거리를 두고 관조하던 과거의 관람태도를 변화시켰다. 즉 시각예술의 표현 수단을 확장시킨 미디어는 관객이 시각 외 여러 감각을 동원하여 몸으로 직접 느끼거나, 작품의 일부가 되도록 유도한 것이다. 또한 미디어는 이미지나 공간 등 물질, 소리, 시간 등 비물질까지 저장, 기록할 뿐만 아니라,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붕괴되는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면서 우리에게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켰다. 이것은 작품을 마주한 관객이 단순히 감상만 하는 것이 아닌 몰입하고, 작품의 시간과 관람객의 시간이 분리 되는 것이 아닌 한 공간 안에서 동시적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 전반에 ‘소리’라는 재료를 통해 도드라지게 드러나고 있는 청각적 체험은 단순히 미디어 매체의 실험을 즐기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작품 안에 침투하여 몸을 조금 기울이고, 가만히 귀를 기울여 예술가들이 담은 시대의 다양한 소리와 현재의 시간들을 경험할 수 있다.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씨음>
권병준×양지원
1전시실 <씨음>전은 그동안 전자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형태의 사운드인스톨레이션과 퍼포먼스, 타장르 예술가와의 협업을 활발하게 해온 권병준과 그리기(이미지)와 쓰기(문자)의 성질과 관계를 탐구하고 있는 양지원이 팀으로 전시 한다. 두 작가가 가진 작업의 프로세스는 상반되면서도 대상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관계를 맺는 태도, 방식이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씨’와 ‘도(c)’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를 지닌 <씨음>전은 이들의 공통된 관심사가 소리·쓰기·그리기로 변이되는 과정들을 현장에서 최소한의 흔적으로 남긴다. 공간 안에 혼재된 소리 조각들과 이미지의 흔적들은 관객이 몸을 움직여 이동하면서 발견했을 때, 새로운 결합으로 도출되어 전시 공간을 점유한다.
<창문 없는 관측소>
김서량×신이피
2전시실 <창문 없는 관측소>는 여러 도시를 다니며 매순간 표류하는 소리풍경을 채집, 기록하여, 그 때의 시간과 기억을 공유하는 김서량과 거대한 사회집단 속에서의 수만 가지의 인간의 감성과 관계의 실을 미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작가의 예민한 시적인 언어와 감성이 담긴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선보이는 신이피의 2인전이다. ‘대청호’의 기후와 생태적 변화과정을 관측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각자의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이번 전시에서, 두 작가는 자신의 조형언어로 대청호에서 관찰되는 지리, 환경, 생태적 변화와 현상들을 탐사를 통해 몸으로 직접 겪은 것을 시청각 매체로 풀어낸다. 각 장소에서 나오는 주파수, 즉 지금 그곳의 모든 소리와 시간을 디지털 매체로 기록하는 김서량의 접근방식과 날씨, 환경의 변화에서 받은 영감을 문학적 심상으로 표현하는 신이피의 작업은 각자 다른 온도를 가지고 전시공간 안에서 유연하게 풀어나간다.
<하얀선율>
이예린
3전시실 이예린의 <하얀선율>은 작가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보여준 음악과 시간의 탐구의 연장선으로 ‘악보 거꾸로 쓰기’를 통해 음악이나 소리의 시각적 형태를 변형시키는 실험의 일환이다. 소리의 기본 형태는 공간성보다는 시간성을 지닌 비물질적인 요소이나, 악보라는 기호 형태로 기록되어왔으며 이후 기술의 발전으로 다양한 기록방식으로 하나의 독립된 매체로써 발전, 전승되어왔다. 작가는 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의 악보를 캔버스 위에 거꾸로 쓴다. 완성된 곡을 변형하는 과정을 통해 견고하고 계산된 배열(박자, 화음)로 구성된 음악의 시간적 질서를 파괴한다. 규칙을 깬 악보 드로잉은 기록으로써 악보의 역할보다는 이미지 그 자체로 다가오며, 작가가 한 땀 한 땀 바느질 하듯 변형된 음들은 시간을 시각화한 소리가 되어 새롭게 재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