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채화水彩畵는 어떤 대상의 맑고 순수한 느낌을 부각시키고자 할 때 흔히 비유되는 수식어修飾語다. 문학작품에서도 수채화가 갖는 이러한 이미지는 십분 활용된다. 작가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 이 용어를 적절히 삽입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독자들에게 주입시키는데 효력을 발휘한다. 이는 수채화가 갖는 시각적인 상쾌함과 투명성을 통해 확보된 이미지 덕분이다. 어찌보면 이것은 회화 영역으로서 수채화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이나 관심보다는 수채화의 관념적 이미지가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시각적인 상쾌함과 투명성은 수채화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다. 하지만 이런 인식이 오히려 회화로서 수채화의 가능성을 규정하는 소지가 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천년하고도 수백 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는 수채화의 역사 속에서 기초 회화학습으로건, 혹은 간편한 재료와 도구로 빠른 시간에 완성할 수 있는 습작으로건, 수채화는 오랜시간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해왔다. 또 그간 재능있는 화가들에게 다양한 기법과 장르를 개발할 수 있는 영감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르네상스시대 이후로 듀러(1471-1528), 렘브란트(1606-1669), 터너(1775-1851), 바우하우스패밀리들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달리하는 화가들에 의해 수채화기법을 활용한 다양한 재질과 깊이감의 추구로 수채화는 더욱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수채 고유의 투명성 여부를 넘어, 무엇을 선택해서 어떻게 그리느냐의 표현형식의 방향성을 개척하는데 개가를 올렸다.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이러한 작업에 매진하고 있으며, 수채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늠하는 여정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번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에서 기획한 ‘물과 색채, 그리고 빛’은 소재의 선별이나 표현방법의 차별화를 통해 수채질감의 다양성과 풍부한 표현이 타진되는 작품들이 전시된다. 동시에 사람들이 엮어가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다양하게 바라보는 작가들의 독특한 시각을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이다. 주로 풍경을 다루는 김상용의 작품들은 정적에 감긴 듯하면서, 순간 묘한 긴장감을 연출함으로써 화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짙푸른 바다를 에워싼 ‘동해야경’의 어두운 정적감은 잠시 세상과의 소통을 멈추고자 하나, 가로街路를 밝히는 등燈은 오히려 이러한 조용한 멈춤을 정지시킨다. 앉은 채, 깊게 자신만의 ‘휴식’에 빠져있는 소녀의 오른 뺨에 내리는 밝은 빛은 그녀가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음을 암시한다. 박동국의 ‘내린천’은 강원도 산간풍경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그린 것이다. 산을 등지고 들어선 한채, 혹은 간혹 여러 채 인가人家가 들어선 풍경은 강원도의 정서를 그대로 전달한다. 화전을 일구는 산간의 삶을 연상시키는 단출하고, 고즈넉한 한 집채들은 그 안에 담긴 있을 구성원들의 애환이나, 여러 세대가 교차하면서 쌓아온 다양한 삶에 대한 작가의 연민과 성찰이다. 송금석의 ‘집으로’시리즈는 물기를 잔뜩 머금은 도시의 야경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높은 빌딩과 가로등,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서 뿜어지는 불안정한 열기는 어두운 대기를 통해 더욱 강렬하지만 그럴 수록에 깊어지는 고독감을 들춰내는 듯하다. 혹은 후미진 뒷골목의 가로등을 등진 자者의 뒷모습은 우리가 안착해야할 곳이 어디인가를 더욱 절실하게 상기시켜준다. 이광수의 ‘비치다’ 연작은 피사체와 그 존재로 인해 발생된 그림자, 혹은 피사체의 투영을 통해 물질과 비非물질의 관계를 말한다. ‘내我’가 존재하는 이상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관계속의 나, 얽히고 연착되는 자연의 이치, 인과因果라는 섭리의 통찰은 작가의 지극한 절제와 계산을 통해 시각적 용어로 가다듬어져 있다. 이승희는 “관계” ․ “여정” ․ “섬” ․ “사랑” ․ “그리움” 등 낯익지만 선뜻 친근감을 갖기 어려운 소재들을 다루어왔다. ‘그리움’이라는 작가가 제시하는 감성적이고 예민하며, 다소 자극적일 수 있는 이 제재는 구체성과 간결함의 공존과 타협 속에 지극히 서정적으로 화면 안에 안착되어 있다. 전중관은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깊다. 그의 작품에는 현대의 사회문제와 불균형한 의식행태가 엉킨 부산물로 해결조차 궁색한 ‘노숙자’들, 성공강박증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의식을 꼬집는 ‘줄서기’, 여기에 도덕불감증에 대한 자조 등이 실려 있다. 세상을 보는 작가의 이러한 견해는 이른바 ‘거꾸로 보기’라는 다소 해학적인 타이틀에 집약되어 있다. 청원군립대청호미술관 학예사 장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