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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료에 의한 선(線)과, 선(禪)에 대한 화학적 사고



1. 물(物)
‘물리적이다’란 말을 쓰는 것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접근방법에 대한 현상의 회피로 삶의 방법론과 시각의 다름을 나 이외의 다른 시각으로 변명하기 위함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시각 심리적 반응에 대한 반응은 물리적 반응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가의 의심에서 출발을 했기 때문이다. 시각은 인간의 여러 감각 중 가장 일반적이기 때문에 다른 감각에 대하여 신뢰의 폭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물(物)은 칸트의 물 자체로 본다. 그래서 물은 잃어버린 대상이고 욕망의 대상이다. 학자들에 따라 물은 상징적 질서 속에서의 사물들의 재현이라고 설명하기도 하고 물은 상징적 의미를 넘어선 사물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물은 잃어버린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라는 것이며 금지된 대상이기도 하면서 재발견되어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미학에서의 창의적인 것과 진화에 의한 변화는 물 자체가 아닌 물리적 변화에 근거한다. 하지만 변화는 물리적 근거 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 결국 화학적 변화에 미학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차용을 하여야 물이 욕망의 한 대상인 이유가 어느 정도 명백해진다. 물이 물리적 범위에서의 변화는 변형에 근거하는 이유로 해석이 되고 물이 다른 물로의 전향이 변화로서의 욕망이 되는 것이다. 다시 표현하면 물질의 모양은 바뀌지만 원래의 성질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이면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고, 모양뿐 아니라 성질까지 바뀌면 화학적 변화에 의한 변화이다. 일반적 물리적 변화가 일어나면 모양만 변하지만 화학적 변화는 색과 냄새로 새로운 성질을 갖게 된다.
민병길 작가는 대학 재학시절 화학을 전공하였다. 그의 전시에 따른 작품이야길 시작하면서 물리적인 것과 화학적인 부분을 서두에 둔 것은 그가 그의 일반적 사실인 전공학문이 작품을 위한 과정에서 질료는 중요한 부분이며 작업에 크게 작용을 해왔기 때문이다. 다년간 민병길 작가가 고집하던 작품에는 공통적인 하나가 존재를 하게 되는데 그의 질료에 대한 고집과 고민, 그리고 사진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한 질료미학이 우선되어져 있다. 질료는 물상(物像)의 사실적 환경에서의 작품 내에 드러내기에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체를 위한 시간과 노력들이 존재해 왔다. 서양식표현인 물상을 중국에서는 형사(形寫)라 하여 시적 언어로 사용을 하여왔다. 중국의 미학자 이자 철학자인 리쩌허우李澤厚는 경계와 여운의 맛은 후기 중국의 미학으로 인생의 태도는 선의 깨달음을 겪고 자연의 풍경으로 전환되었는데, 자연의 풍경에 의해 지향되는 것은 정신의 경계다. 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이것은 자연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의 발전을 의미로 보았다. 경계와 여운은 인간의 사회도 아니고 인격도 아니며 감정도 아닌 마음의 경계라는 것이다. 경계에는 환영의 미가 생겨나게 되며 환영의 미는 인식이나 윤리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본체에 대한 오묘한 깨달음과 체득임을 설명하는 것이라 하였다.
질료들을 활용한 배치에서 물상을 찾으려는 작가의 의지처럼 보이지만 리쩌허우의 해석에 의하면 이미 피사체 사물의 형상을 그대로 옮기려는 형사에서 질료에 의해 경계를 만들지 않는 존엄한 형상의 유기체로 해석을 하는 것이 작가가 가려고 하는 대상과의 접지부분일 것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숨이라 했다. 생(生)과 멸(滅)의 숨은 긴장과 이완이고 팽창과 수축의 리듬으로 정지되어있는 작품 안에서 생과 멸의 경계를 찾게 되어 결국에는 충담(沖淡)의 흥미로 무미의 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맛으로 표현한다면 맛이 없는데 이미 맛을 느끼고 있는, 혹은 맛이 없는 것으로 온갖 맛을 조화시키는 것이 충담의 깊이로 민병길 작가의 사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미이자 선이다. 질료의 성질은 어떤 최고의 체험에서는 인간관계가 서로 동일해져서 특정한 감정이 없어진다고 한 매슬로 Abraham Harold Maslow, 미국. 인본주의 심리학자. 욕구 이론.
의 생각과 일치를 하게 된다.


2. 선(線)
선(線)의 이해에서 자연을 상상하게 되는 일은 앞서 이야기한 시각의 일반적 경험재로부터 오는 반응이 시각 이외의 지각적 사고를 물리적으로 하기 때문으로 본다. 시각으로서의 선은 일정한 거리와 방향의 계산을 보이는 대상의 그것만으로 완벽하게 재현하여 보여 지지 않는다. 실 예를 들면 그리스 파르테논의 신전하단을 보면 좌우는 중앙보다 위로 솟아있다. 우리의 시 지각은 착시가 생기게 되어 이를 일반적인 시각으로 느끼기 위한 방법이 라이즈이다. 라이즈는 오더라는 기둥 장식부분과 기단의 중앙부를 약간 높게 설계를 한 것으로 우리의 시각이 광학적 기관에 의해 착시의 현상으로 좌와 우가 올려다 보이기 때문에 이를 수평으로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 지각 과학의 동원이다.
사진은 장르로 구분되는 미술에서의 지역적 구분 짓기에서 벗어나 있다. 재료로 구분되는 물질의 구분에서 역시 현대 사진에서는 많은 부분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공간을 지배하는 것이 서양의 미술 표현 방식이라면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러면서 오히려 공간을 다스리는 것이 동양이 표현하려는 미학의 표현 부분이다. 한국화나 동양화로 불리는 회화와 서예에서의 선은 획(劃)이다. 사진에서도 선은 획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단일한 획인 선의 정의는 조형의 가장 기본적 요소이나 시(詩)에서의 선은 언어의 속도와 방향, 온도에 절대성을 지니고 있다. 민병길의 사진에서 선은 자연 안에서 녹아있는 보이지 않는 사고의 암묵적 시각의 요구로 먹을 쓰는 회화에서의 묵흔으로 표현되어 마치 신비에 의한 심미감이 선 안에 배어 있다. 자연은 선으로 인하여 내재적 미를 표현하려는 창조자의 욕구에 구상성과 추상성을 제공한다. 민병길의 작품에서 나타난 선이 시선으로 응시되는 지점에 색이 관람자의 시각으로 생성이 되는 과정에서 원형상의 이미지는 파괴가 된다. 이를 선에 의한 물상의 해체라 표현을 하였고 이 해체에 의해 장르는 확장이 되었다.
경직된 선은 후기모더니즘을 탄생하게 되어 현대미술의 해체의 시대와 상황에 있어서 장르의 확장이 경계가 모호한 모든 방법과 수단이 가능하고 무엇이든지 예술이 될 수 있는 ‘다원주의’ 시대가 되었다. 진리가 부정되고, 상대적이고 타자적 개념이 텍스트와 상호텍스트가 하나의 개념으로 수면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전통적인 주제와 방법을 포함한 다양한 주제와 양식, 매체가 차별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가 된 것도 이 지점으로 본다. 후기모던 세계가 가져온 양식과 질료의 기본적 변화는 다양화된 새로운 취향으로 부조리하고 역설적인 것이다. 이는 우리시대의 특징으로 후기모더니즘의 주체의 죽음은 정보혁명에 의해 야기된 것이라고 학자들은 주장했다. 장 보드리야르, Jean Baudrillard. 1929. 프랑스. 현대인은 물건의 기능보다는 기호를 소비한다고 하고, 모사된 이미지가 현실을 대체한다는 시뮬라시옹(Simulation) 이론을 주장함.
후기모던 예술가들은 텍스트나 작품은 원칙으로 기존 규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그것들은 낯익은 범주들을 텍스트와 작품에 적용하는 규정된 지위에 따라 판단될 수 없기에 창작의 규칙과 범주들은 작품 스스로가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민병길은 선은 이곳, 이 지점의 후기 모더니즘적 환경에서 충돌이 발생을 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선의 질서를 작가의 표현방식과 피사체에 들어온 형상을 재해석하여 선과 선의 분별이 화면에서 저항이 되는 환경을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가 차용하려던 하늘, 바다, 수평선, 모래 등의 선에 의한 구분을 이미 질료로 재해석하여 해체가 된 현실에서 수묵적 정서를 해석하지 않고 색과 형의 해체에 따라 자연의 의식에 맡겨 작가는 그곳에서 회피를 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는 동양 회화가 추구하고 있는 기본 정신이 자연현상이 아니라 근원의 형상에 있다는 것을 차용하여 근원적 형상을 조형의 언어인 획으로 점을 연결하는 선의 초월세계를 나타내었다. 그가 질료로 그은 획은 자연현상의 획이 아니라 오브제로서의 선으로 재해석 된다. 이는 한국의 현대미술이 서양의 미술이 한때 주류를 이루었던 60년대의 오브제라는 미니멀리즘의 도입으로 여기서의 핵심이 되는 작품해석의 논제는 역시 선 형태와 선의 존재에 의한 관계가 만들어 내는 공간의 문제인 현존성의 등장이다. 재해석된 물은 선에 의한 것으로 주체를 대응하여 합리적 의식을 파괴하는 물 본연의 존재 방식에 있다. 현대미술용어사전-오브제

사진의 작품이 획을 그을 수는 없지만 획이 주는 평면 공간의 물에 대한 이미지는 인식을 시킬 수 있다. 선을 획으로 규정을 하고 공간을 구분하는 사건을 발생시킴으로 인해서 작가는 시각으로 구분 짓는 선들의 경계를 위험한 지점에 착지를 시켜놓았다. 필자는 그의 전시 작품을 작가의 동의하에 촉각으로 느끼려 시도를 해보았다. 분명히 촉각적인 것보다 시각이 강하지만 촉각의 느낌은 착시가 아닌 질료의 힘으로 선의 역동이 오브제화 한 것 같은 착각의 시각 감정이 선위에서 살아있음을 경험하였다. 생소함이라고 표현 할 수도 있겠지만 다 년간 민병길 작가의 작품 속에서 그가 찾으려는 것과 관객이 찾아 경험하려는 지점이 상당히 유사하기에 어색함이나 작가가 비현실적으로 강요되는 지나친 해석과 과장된 표현이 이 작품들 안에서는 없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관객을 그의 작품 선위에 자신의 이지와 관계없이 관객 스스로 올려놓아 스스로 피사체가 자연의 풍경으로 하여 일체화되기 원하도록 연출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수묵이나 드로잉처럼 느껴지는 점들의 반복과 선들의 중첩이 사고의 실현이 아닌 대상의 본질에 도달하는 것으로 결핍이나 부족이 아닌 탄생의 주체, 즉 선에 의한 수묵적 사진 작업의 이데아에 접근을 하는 방법인 것이다.


3. 상(像)
풍경은 그것이 그림이든 사진이든 미학이 범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한 소재로 등장을 하는데 그 이유는 작가의 의식 안에서의 자연풍경이 그 상(像)의 내면을 벗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풍경은 문화와 정치와 경제의 관점을 모두 안고 있는 다양성의 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 풍경을 모티브로 작품화 하여 하나의 피사체로 접근을 하게 되면 역사 전반의 위치의 이동과 시간의 변화를 측정하는 도구가 된다.
근대 사진은 현실이 그대로 사진의 내용이었기 때문에 현실을 어떻게 사진으로 수용할 것인가가 유일한 문제였다. ...(중략)... 사진이 현실 재현 수단이라는 기본구도 아래, 작가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기 알맞은 현실을 골라 이를 이상화한 것이 근대 사진이었다. ...(중략)... 그에 비해 현대사진은 현실을 포장지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작가의 주관적 사상이나 감정, 곧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소재로 현실을 인식한다. 현실 자체의 의미나 가치에 연연하지 않는다. 극적인 사건보다 작가의 내적 이미지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굳이 결정적 순간일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한정식 ‘현대사진을 보는 눈’ 중에서-
한정식의 연구대로라면 이미 작가가 접근한 풍경의 개념은 전통적 풍경의 개념(여기서는 다분히 한국적 풍경의 인식)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된다. 이탈한 범위(풍경화에서 서양식 풍경이 한국 사회로의 이식과정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차이)는 오히려 풍경의 정치성에 강조와 강화를 가져다주어 사진예술 해석의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을 생산하게 된다. 풍경 사진을 위한 출사와 대상으로 선정한 피사체는 19세기까지는 회화적 소재와 회화적 사진의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은 자연적 유미주의의 도식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러나 근대로 진입을 하면서 풍경도 그 의미가 부여 되어 도시 주변의 풍경이나 아예 도시 안으로 파고드는 도시산업 사진들의 등장으로 변화를 하여 왔다.
표현하려는 대상의 상이 풍경 안에 있다면 그것들이 그냥 일종의 심상 사진 작품이라고 칭하는 것과 전통적인 풍경의 사진과의 인식의 변화는 작가의 피사체를 통한 인식의 태도로 보아야 할 것이다. 풍경에서 찾은 심상의 사진으로 작가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하려는 의도는 작가의 콘셉트가 되고 의도된 콘셉트는 사진에서 시각의 정보와 일치를 하게 되어 관객의 감상 요구도 포함이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풍경과 심상이 일치하게 되는데 이를 스티글리츠 Alfredo Steiglitz, 사진작가, 미국. 회화 주의 사진에서 사실주의 사진을 찍었고 분리파를 창시함. 서양화가 조지아 오키프의 남편
는 동등하다는 뜻의 이쿼벨런트 Equivalent라고 표현을 하였다. 현실과 내면이 일치한다는 심리학은 동양의 사상 쪽에 많은 부분 기울어 있는데 불구하고 서양의 작가에 의한 상의 내면을 이야기 한 부분은 아우라 Aura의 전형적 시각화로 보아야 할 듯하다. 사진의 역사에서 복제 개념의 사진이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접근을 위하여 선택한 것이 회화의 형식이다. 하지만 핸리 애머슨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명제를 가치로 두고 회화 주의 운동을 반대하고 이후에는 스티글리츠가 분리파 운동으로 사진을 새로운 회화 즉 풍경 사진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번 민병길 작가의 전시 ‘질료들의 재배치’에서 질료는 ‘형상과 함께 존재의 근본 원리’라고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으로 보면 질료는 형식을 갖추어야 되는 일종의 상으로 이를 존재의 지위를 재배치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사진의 위치 지점에서 사진의 지위를 풍경의 전사에서 미술이 요구하는 회화의 미적 접근방식도 일부 수용을 하면서 같은 시각의 다른 해석이 이질적이지 않기 위한 숨 쉬는 풍경의 사진으로 재해석 하려는 의도가 상당부분 접근이 되었다고 본다. 풍경사진은 상의 관계에서 서로의 상이 교차되거나 비켜서있어 내면과 외면을 관조해가면서 서로를 조율하고 양보하여야 피사체를 배치하여야 좋은 구도를 얻을 수 있다. 상(像)이 장(場)으로의 관조적 관점이 일치하기 위해서는 공간이 공존해야하는데 이를 내적 풍경과 외적 풍경의 해석이 동일할수록 재현의 철학적 사유로서의 개인적 창조물이 된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이 그렇듯이 풍경 사진의 경우에도 작품은 단일한 이미지인 상을 제공하지 않고 다양한 텍스트와도 공존을 하며 수목적 사고와 지각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작품내의 상은 다의성을 가지게 되는데 작가가 배열한 상은 상과의 결합과 배열의 과정에 인위적이거나 우연적인 현상이 나타나게 되기 때문이다. 상은 완성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고 서로의 관계를 충돌과 공존으로 생성되어 의미의 전달이 다양성과 복합적 이미지를 양산해 낸다. 민병길 작가의 의지대로 라면 그의 사진은 우리시대의 시각이 갖는 공통적인 의식인 동시대적 환경에서 상의 본성을 해체에서 찾는 것이고 해체는 질료들에 의한 상의 재배치로 해석이 되는 것이다. 상을 풍요롭게 수용하는 것은 섬세한 구분과 양보를 통래서 의미의 차이를 추적하고 확정적인 상의 규명을 연기(延期)하는 것이다. 자크 데리다. J. Derrida. 프랑스. 철학자. 구조주의의 방법을 철학에 도입
민병길 작가는 전시작품의 배열에서 데리다가 이야기 한 것처럼 전체를 다스리지 않고 유보하며 상의 실체를 현재에 머물지 않게 하는 철학적 공유의 시각을 연출하였다.



4. 선(禪)
‘질료는 나를 이루고 있는 모든 우주의 환경자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라는 관념의 개체를 벗어난 자연, 그것의 입장에서 대상의 본질을 보려 한다.’는 민병길 작가가 작품전을 준비하면서 쓴 짧은 작가노트의 한 부분이다. 이 말의 앞과 뒤를 잘 연결을 하면 도(道)와 선(禪)에 이르는 령속(靈俗totem)의 영감(靈感)이 그의 사진시각에서 관객에게로 전달된 풍경사진으로 해석이 달라 질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위의 글 상에서 본질의 재배치를 질료의 환경 변화와 형상의 공존으로 표현하였다. 이 부분은 질료들을 형상의 한 부분으로 선(禪) 부분에서 이야기 하는 질료와는 다소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선을 미래에서 가져오는 과거의 실체로 존재가치의 문화 요소라면 사진 예술에서 선의 미감이 미학으로 해석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술과 선 사이의 관계설정은 쉽지 않다. 하지만 선이 종교적 관념이면서도 생활 속에 자리를 하고 예술에 영향을 끼쳤기에 선을 미학적 관점에서 고찰해 보는 일은 가능한 일 일수 있다. 현대의 미학이 중심 개념에서 이익으로부터 절연해 대상을 관조할 때 우리가 얻어내는 쾌와 불쾌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부분을 인지해 보면 우리는 민병길의 풍경사진, 거기에서 선을 통한 예(藝)로 소통하는 관점이나 크로스 되는 지점을 찾아 해석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선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변함없는 예술의 주제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며 작품의 형식과 내용을 떠나 작가적 심상을 작품에 심으려는 의지의 활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진 예술에서 선의 세계를 표현하는 사진가로는 영국 출신의 마이클 케냐 마이클 케냐. Michael Kenna. 1953. 영국. 사진작가
가 있다. 그는 수묵산수화풍의 사진을 미니멀리즘이라는 예술형식으로 재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풍경사진의 구성으로 단순한 구성이지만 맑고 그윽한 선의 세계를 잘 표현하여 피사체가 흔들리는 것은 잡아 고정을 시켜 신비의 선을 찾아간 작품이다. 우리나라 작가 배병우의 소나무도 돈오의 경지라 하여 무덤 주변의 도리솔을 피사체로 활용을 하는데 도리솔은 땅과 하늘, 삶과 죽음을 잇는다는 민속학적 의식이 내재되어 있다. 배작가 그 역시 새벽안개를 아우라로 선택하여 피사체에 선의 의식을 넣어 표현 하는데 소나무의 선과 흑백의 그러데이션으로 삶과 죽음의 변주가 그 선이다. 두 작가의 작품을 차용한 연유는 서양식 삶과 사유로 살아온 작가의 선(禪) 지점과 한국의 토양에서 성장한 작가의 선에 대한 시선과 시각과 심상이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민병길 작가는 작가노트의 한 부분을 해석하면 이렇게 이야기 하는 듯하다. ‘나는 나의 풍경사진 작품에는 어떠한 대상이든 그 대상이 나무나 하늘이나 강이거나 바다이거나 숲이거나 모래사장이든 간에 어떠한 것도 형상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내가 질료들을 재배치하려는 것은 빛일 뿐이고 상의 상일뿐이다, 여기서의 상은 해체에 의한 재배치로 심상의 어떠한 고통도 소멸시키는 질료를 형상한 것 그 것이다. 상 없는 상을 통하여 마음의 자연 일치, 그 안으로 내 작품의 빛에 다가가는 것이다. 민병길 작가의 사진 개념에서 보듯이 동서의 두 작가에게서 그들이 심상으로 다루려 한 선의 과정에서의 자아의 인식과 타자의 인식에서는 차이를 보이지만 목표를 위한 작가 위치는 동일한 질료들로 인식이 된다.
선의 작품에 따른 미학이 동양의 내부에서는 자연스러운 삶의 부분이자 삶의 예술인 명상과 영감을 얻어내는 중요한 요소이었다. 동양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 서양의 작가들의 경우 모더니즘 이후 생활양식에 사용하고 있는 젠 스타일은 미니멀리즘과 일본식 취미의 혼종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는 선적인 감성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수용을 해야 한다. 민병길 작가가 피하고 싶었던 부분이자 작품에 수용하기 어려운 것으로 서양근대의 관점이 개입되어 있는 미학을 선과 동양문화에 동일하게 적용할 때 그 이식의 과정을 오류로 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양미학을 단순하게 적용하거나 서양미학의 타자적 관점을 수용한 경우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서양미학이 제시하거나 또는 서양미학의 타자적 관점을 적용하여 동아시아 문화를 해석한 가장 상투적이며 익히 들어왔던 논리는,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서양에 대하여 직관적이며 초월적인 동양을 대비시키는 방식이다. 민 작가의 사진에서는 이 부분을 여과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5. 시(時)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 모든 문화는 특정한 사회 속에서 배양되고 개화한다. 사진작가 브레송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Henri Cartier-Bresson. 1908. 프랑스. 사진작가, 화가
은 ‘평생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을 쳤으나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 이었다’라고 했다. 또 ‘사진이란 순식간에 어떤 대상이 갖는 의미이며 또한 그 이벤트에 어울리는 표현을 주는 정밀한 형태 구성에 대한 동시 인식인 것이다.’라고도 했다. 사진을 찍는 작가들이 피사체와의 구도에서 경쟁적으로 이기려는 시간과 수용하려는 시간의 관계 속에서 한없이 고민하는 부분이 시간이고 순간일 것이다. 문화는 배양이라는 사전적 뜻이 담겨있다. 사회는 예술의 대상이고 자연 역시 사회 안에서 정치와 경제를 대변하는 피사체이기도 할 것이다. 사회에서 문화, 즉 배양은 종의 탄생을 위한 인큐베이터 이자 포자 양식을 위한 비커beaker 일수도 있다. 사진이 사회 문화 속에서 다른 균체로 배양하여 종을 번식하거나 이종으로 교배를 하려는 것은 예술행위에서의 발전적 진화를 위한 행위이다. 사회 안에서의 순간은 마치 카메라 바디의 셔터 속도와 일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時)는 속도가 아니고 순간이다. 교배를 위한 시간이나 번식의 순간들 모두가 렌즈 안으로 들어온 피사체가 작가에 의해서 혹은 카메라의 조작된 앵글에 의해서 속도와 빛으로 재탄생하는 일이다. 이를 베르그송 앙리 베르그송. Henri Bergson. 프랑스. 철학자.
은 ‘시간은 어느 한순간도 같을 수 없는 이질적인 흐름의 연속으로서 이는 우리들의 심리 상태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의 인식이다.’라는 말로 지속과 순간의 상대적 시를 표현하였다.
사진 예술에서의 시(時)는 현상학의 원리를 적용하여 개념이 파악되어야 시의 순간 이론이 가능해 진다. 현상은 대상과 상호적 관계를 가지면서 주제적 체험에 의해 발생되는 것으로 실재적인 지각이나 의식의 본질적 접근에 의한 서술적 역할이다. 결국 시는 시간성과는 다른 현상으로 해석을 하게 된다. 이를 하이데거 마르틴 하이데거. Martin Heidegger. 독일. 실존철학자.
는 시간성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화 하는 것이며 시간화는 현전이라 하여 존재와 함께 존재한다고 정리하였다. 시간은 개별화의 원칙으로 통하기 때문에 근원적 시간성에 있어서 현재는 순간이 된다. 민병길의 사진 속에서 상은 시에 의하여 현전인 존재와 함께하는 존재하는 질료들의 재배치로 해석이 되며 현재의 시간성을 순간의 시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시장 한가운데 거대하게 펼쳐지는 풍경사진의 이미지 중첩의 연출은 안개라는 질료에 의해 시간의 현존재를 몰아(沒我)의 장소로 안내를 하고 있다.



6. 동(動)
민병길 작가의 이번전시의 주제가 ‘질료들의 재배치’이다. 재배치는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위치의 개념에서 성격과 관계를 파괴하여 장소를 이동함으로 다른 성격의 질료나 재료로 재탄생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렇게 성격에 따르거나 작품의 화학적 변화를 위한 질료의 재배치는 위험한 오류를 가져 올수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창조적 변화는 물리적 변화로서는 그 변화의 정도를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물리적인 변화는 변형의 정도이고 화학적 변화는 모든 것의 변화로 민병길 작가가 필요로 한 질료들이 완전체에서 화학적으로 불완전체로의 재배치 인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민병길 작가는 전시를 위한 작은 노트에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일에 대한 합리성은 나 라는 개체를 통해서 보여 지는 대상일 뿐, 하고자 하는 또 행하고 있는 그 일 자체는 아니다. 나 라는 관념적인 개체를 벗어난 자연, 그것의 입장에서 대상의 본질을 보려고 한다.’ 민병길 작가가 수십 년을 학습하고 학습 되어져온 사진과 표현하려는 대상의 상에서 인지되는 모든 것들을 일반적으로 관념적이다 라고 표현을 한다면 자신은 개체로서 역으로 내가 자연의 피사체가 되어 자연을 시각이 가능한 타자화로 인정을 하여 타자에 의한 자신의 자아현상을 보려는 것이다. 라캉 자크 라캉. Jacques Lacan, 1901 프랑스 생. 정신분석학자
의 거울효과로 보면 그의 비 관념화와 주관화는 인간의 자기의식과 타인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첫 단계로 거울에 비친 통합된 자기 이미지와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작가는 스스로 소외시키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작가의 비 주관적 이동은 주관을 타자화 하여 자연의 물을 동적 심상으로 더 가까이 다다 갈수 있는 의지로 보여 진다.
사진예술은 동의 대상에 대한 정의 표현으로 가시화한 대상의 시간을 공간으로 변환하는 순간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니고 있는 물리학적 배경이 공간적 성질의 물리학적 요소로 보아 시간의 소요 속에서 사물의 변화는 동(動), 즉 움직임의 개념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풍경의 공간에 상존하는 상들은 물리적 환경이 주어지지 않으면 동의 활동이 극도로 미미하여 결국은 멈추어진 정지의 시간으로 보여 질수도 있다. 이를 동의 시간으로 견인하는 것이 작가들의 시각이자 의지로 가능한 것인데 공간화 된 표현은 시간이 성립되는 과정으로 작품화 된다고 보아야 한다. 현대사진을 보는 시각에서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던 과거의 의식과 개념에서 시공이 분리되지 않은 관계성으로 연결되어져 있는데 이를 상관관계의 초월성이라 한다. 민병길의 풍경사진에 동적 이미지를 극소화하여 시각으로 음을 읽어내는 듯 한 동적의 시선이 있을 뿐이다. 동은 공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물리적환경이지만 그의 사진 작업 내에서는 분명 두 물리적 환경을 동일시하는 과정이 움직임에 대한 리얼리즘의 보인다. 그것은 리얼리즘이 추구하는 개념으로 시대와의 재현적 연관성이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시대상에 대한 고찰과 작품 속에 그려진 사회적이거나 개인적 삶의 형태간의 인과관계, 시간적, 공간적 세부묘사들이 동적 성격의 질료들에 의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민병길은 회화주의 풍경 사진 작업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결코 미술에서의 회화적 시각에 의한 회화주의는 아니다. 회화가 할 수 있는 영역의 밖에서 그만의 사진예술 세계를 위한 변화의 노력은 오랜 전부터 보아온 과정이다. 민병길 작가의 작풍을 일부 비평가들의 시각에서 보여 지는 것은 미술의 화풍 중에서 인상주의의 형식을 사진에 도입을 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 이유는 모네의 외광묘사법을 사진에 도입을 하여 연초점 묘사에 의한 풍경사진을 만들려 한 것이다. 라는 평이다. 하지만 필터의 활용이나 렌즈의 조작으로는 후광 역광 외광은 작업할 수 있으나 찍는 과정과 인화의 과정에서의 화학적 변화를 적용한 그의 자신은 지극히 창의적 과정에서 얻어진 풍경사진의 한 장르 인 것이다.
청주시립미술관 로컬프로젝트 민병길의 질료들의 재배치 전시는 그간의 로컬아티스트들의 전시형태나 콘셉트에서 사진이 가지는 특성과 작품을 수용하는 방식이 잘 정돈된 연출이었다고 본다. 청주시립미술관의 공간은 전시 연출이 어려운 공간으로 유명하다. 특히 첫 번째 전시장의 활용은 작가의 많은 고민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진의 작품이 아무리 크게 출력이 된다고 하여도 엄청난 높이의 천정은 쉽게 작품을 잡아먹고 만다. 이러한 불편한 전시공간을 위한 작가의 선택은 영상 작업의 활용으로 마치 전시장에서 영화를 보는듯한 집중과 몰입 그리고 그 작품 속의 물상 속으로 관객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흡입력이 돋보이는 연출이었다. 민병길 작가가 의도한 타자화하기 위한 작전의 성공인 것으로도 보인다. 레미 차우크 레미 차우크 Remy Zaugg 1943. 스위스. 화가. 공간연출가.
는 전시장은 효율적인 동선 보다 관람자가 어떻게 머물 것인가에 중심을 두고 설계를 하였다. 그는 전시장은 머무는 공간이며 작품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공간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미술관의 핵심은 다이어그램Diagram에 있다고 보고 장방형의 공간 비례가 집중력을 높이고 전시장의 동선이 서로 충돌하지 않는 공간 구조로 설명을 하고 있다. 동선은 분배되는 전시장이 아니라 마치 영화관처럼 집중이 되는 전시장이 되어야 머무름의 시간이 길어지고 작품에 몰입도가 높아진다는 것으로 공간 연출법을 이야기 하였다. 민병길 작가의 작품전 질료들의 재배치는 바로 그것들의 배치이고 형식이고 연출이며 선(線)을 선(禪)화하기 위한 화학적 변화라고 전시장에서의 감흥을 필자는 감히 이야기 하고 싶다.




김기현(화가, 미술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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