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그리기 좋은 날>전은 청주미술의 현장에서 1970년대 이후 지역적 풍토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구상계열 작고작가를 중심으로 청주미술의 흐름을 다층적인 시각에서 제시하고 상징적 가치를 정립하고자 한다. 청주미술의 가치를 지지하기 위한 기획전으로 기록적 의미에서 작가 생애와 작품세계를 시기적으로 조명하기보다는 작가 각각의 고유 대표성을 중심으로 작품과 자료가 분류되고 구성된다.
故 왕철수, 김형식 작가는 지역성의 고립과 전문교육의 결핍, 사회적 소외, 서정적 구상회화의 반복적 그리기의 실현이라는 공통점으로 주목된다. 특히 사생을 통한 현장 기록, 한국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 소외되었던 화가의 서사 등을 통해 평생 그림에 대한 의지와 집념으로 외롭게 반복된 그리기 실현에 몰두한 작가의 발자취를 조명하여 생애, 열정, 상징성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전시는 한국미술 속에서 청주미술을 검증하기 위한 과정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미술관의 주요 기능인 미술 자료의 수집과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다. 청주미술의 정립과 작가에 대한 연구는 청주시립미술관의 한 축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개인의 주목으로부터 출발한 작고작가전의 지속은 지역미술의 새로운 단층을 보여주는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왕철수 Wang Chul Soo (1934-2004)
“잊혀 가고 있는 우리들 고향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는 일은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재미가 있죠“
청주를 대표하는 향토작가이자 미술교사, 충북의 기록화가로도 유명한 왕철수 화백은 충북의 산하와 소박한 일상을 주제로 평생 현장사생을 통한 풍경화 작업에 천착했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정은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는 고집으로 충북의 명소와 자연을 사생을 통해 꾸준히 기록했다. 현대미술의 다양한 시류에도 오직 고향의 진경과 현장 사생으로 독자적 영역을 추구한 작가는 2004년 작고하기 전까지 “보는 눈, 느끼는 가슴, 그곳에 닿을 수 있는 다리, 떨리지 않는 손으로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라는 바람처럼 작업실이 아닌 고향의 산과 들에서 충북의 정서를 풍경으로 남겼다. 이번 전시에서는 70년대 초기작부터 2004년 마지막 작품까지 150점과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관련 자료가 전시된다.
1934년 충북 증평 장동에서 6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난 왕철수 화백은 1950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 한국전쟁 발발로 다시 대전사범학교로 편입 후 1953년 졸업했다. 19세부터 교사생활을 시작해 1999년 정년퇴임 까지 46년 동안 청주와 충북지역에서 평교사로 재직했다. 1971년 청주문화원에서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2003년 청주 예술의 전당에서 <고희 기념 초대전>까지 9회의 개인전을 개최했으며, 1985년 『충주댐 수몰지역 풍경화집』을 발간하며 신단양과 청주예술관에서 각 각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1991년 <백두산 풍경전>, 1996년 <고향의 사계전>, 1998년 <대청호반 풍경전>을 통해 노장의 나이에도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고자 하는 열정의 결과물을 발표했다. 왕철수 화백은 1979년 한국미술협회 청주지부장 역임, 1986년 충청북도 문화상, 단재학술상과 1994년 충북미술대전 초대작가상을 수상하며 충북을 대표하는 구상화가로써의 지역의 예술 활성화를 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형식 Kim Hyeong Sik (1926 – 2016)
다시 돌아온 고향, 그리고 과거 어루만지기
화가 김형식은 미술에 대한 전문교육과정과 미술 단체, 그룹 활동과는 무관한 작가이다. 1972년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배재중학교 시절 그림을 배운 기억으로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과거의 처절한 현실과 이데올로기를 개인의 상징적 서사로 묘사된 초기작과 고목, 사랑채, 채꾼 등 다시 돌아온 고향에 대한 감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로 구분된다. 그 외 고향 괴산의 풍경, 가족에 대한 연작과 감옥에서의 절박한 시간을 묘사한 수인 연작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특히 빨치산 경험을 토대로 작업한 노을과 겨울산 연작은 격동의 한국현대사 속에 한 개인의 처절한 현실과 이념의 소용돌이의 기록으로 시대적 상황이 묘사된 대표작이다. 그의 그림에 대상들은 상처투성이 과거를 끄집어내어 어루만지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그의 작품은 1999년 개인전 개최 이후 세상에 처음 소개되었으며 2016년 작고하기 까지 고독한 무명화가로 고향 괴산에서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1926년 충북 괴산군 소수면 수리의 부자(父子)독립운동가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김형식은 청주 주성국민학교와 1945년 서울배재중학교(현 배재고)를 졸업했다. 배재중 재학시절 이순종 선생에게 사사 후, 1942년 ‘배재미술전람회’ 준특선, 1943년 ‘선만미술전’에서 입상했다. 1945년 경성법학전문대학교 중퇴,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 후 1949년 중퇴하였다. 해방이후 민족의 이념과 한국전쟁에 휘말리게 되어 월북과 빨치산 활동으로 1972년까지 20여년을 투옥 후 47세의 나이에 고향 괴산으로 돌아와 굴곡진 집안의 역사와 함께한 둥구나무 아래 쓰러져가는 독립운동가 생가의 사랑방에서 무명화가의 삶을 살았다. 김형식 화백의 고립된 삶 속에서 창작되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지켜본 지인들의 도움으로 1999년과 2002년에 걸쳐 두 번의 개인전을 청주 월천갤러리와 청주 조흥문화갤러리에서 개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