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은 청주미술사 정립의 일환으로, 충북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작고작가를 조망하는 전시를 개최해 왔다. 이번 전시는 30년 동안 청주에 머물며 자신만의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한 이완호 작가의 회고전으로, 그의 삶의 기록들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시대별 작품을 통해 선보인다.
이완호(李莞鎬, 1948~2007)는 1948년 경상북도 성주군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는 1976년 충북대학교에서 서양화 실기와 이론 강의를 맡으며 청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고, 1978년 충북대학교 사범대학(미술교육과)에 전임으로 임용되면서 본격적으로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1986년에는 충북대학교 미술교육과 서양화 전공 졸업생, 재학생들로 구성된 ‘무심회화협회’를 결성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오랜 기간 동안 단체를 이끌었고, 1994년 창립된 ‘충북판화가협회’의 초대회장을 맡아 충북 미술계에 판화의 예술성을 알리고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전시의 부제인 ‘삶과 예술의 일치’는 1980년대 후반 작가노트의 제목으로 사용한 언어로써, 작가의 예술관을 잘 설명해 준다.
“나에게 있어 작업은 삶의 일부이며 삶의 충실한 기록이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일이다. 나의 삶과 나의 작업이 다른 것일 수 없고 서로 얽혀서 돌아가는 하나의 둘레이다. 삶의 내용이 작업을 결정하며, 작업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의미 있게 한다. 그러하기에 표현된 것이 아름다운 것이냐 아니냐에 대해서 유의하지 않는다.”1)
이처럼 전시에서는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작품들과 다량의 아카이브, 그리고 지역 화단에 상징적 의미를 지녔던 ‘사창동 작업실’ 재현과 그의 삶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의 특징들을 시대별로 구분하여 전시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완호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청주 현대 미술사에서 그가 차지했던 위치와 의미를 다시금 살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창동 작업실
이완호의 사창동 작업실은 청주 화단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92.16㎡의 조립식 단층구조에 천장을 3미터로 높여 대형 작품 활동이 가능하도록 지은 이 공간은 작업실이라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지어진 지역의 첫 사례로, 당시 작업 공간이 넉넉지 않았던 젊은 작가들에게 선망의 공간이었다. 40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 작업실은 현재 작품을 보관하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1. 모색의 시기: 1965년 - 1980년대 중반
이 시기는 대구 학창시절의 유화 작품부터 홍익대 재학시절, 그리고 졸업 후 1980년대 중반까지 여러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들이 포함된다. 이완호가 홍익대를 다니던 1960년대 후반 한국 화단은 국전과 모더니즘으로 나눠져 극심한 대결구도를 보였던 시기로, 선배 세대들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나간 시기였다. 1970년대 한국 미술계의 주류 흐름이었던 모노크롬 회화 작품
2. 일상적 소재를 시각언어로: 198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
이완호는 일상적 소재를 자신만의 시각언어로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점차 주변의 ‘자연물’에 집중하였으며, 그의 독특한 서체 또한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초반에는 캔버스 작업을 넘어 사물의 상태 그대로를 화면에 부착시키는 오브제 작업을 선보였다. 그의 주변에서 발견된 사물, 잡지 광고물, 사진 등은 작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오브제들로 직접적인 작품의 내용이 된다.
3. 무심의 몸짓, 그리고 여유: 1990년대 중반 – 2007년
청년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참여했던 ‘에꼴 드 서울’, ‘서울현대미술제’, ‘오리진회화협회’ 등 서울에서의 단체전 활동을 중단한 이완호는 청주에서 작업 활동에 몰두한다. 이완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꽃> 시리즈는 이 시기에 제작된 작품들로, 자연을 스스럼없이 바라보는 무심(無心)의 경지를 느끼게 한다. 동양의 문인화를 연상시키는 그의 화풍은 선비 같았던 올곧은 성품과 닮아 있으며, 마음을 비우면 비로소 보이는 계절의 변화와 자연이 주는 여유로움을 화폭 안에 담아냈다.
이완호의 판화와 드로잉
이완호는 첫 번째 개인전을 《석판화 개인전》으로 개최할 만큼 판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 이번 전시에서는 1980년 태인화랑 개인전에 선보인 석판화와 사창동 작업실에서 제작된 판화 작품, 그리고 ‘충북판화가협회’에 출품한 작품들이 전시된다. 더불어 디자인, 건축, 자연 등 그의 다양한 관심사를 확인할 수 있는 드로잉 작품 수백 장 중 일부가 공개된다. ‘작업을 위한 드로잉(에스키스)’은 제자들에게 늘 강조했던 그만의 교육 방식으로, 교육자로서, 작가로서 작품을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1) 이완호, 「삶과 예술의 일치」, 『모더니즘以後展 1部: 1980-1985』, 무역센터 현대백화점 현대미술관, 1988, p.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