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미술관 2022년 기획전 《내일의 미술가들 -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을 개최한다. 전 국가적 인구감소로 인한 지방소멸이라는 흐름 속에 지역미술계 역시 새로운 예술담론을 제시할 젊은 예술가들의 배출이 점점 줄고 있는 실정이다. 청주 또한 수 십년의 역사를 지닌 지역 미술대학의 순수계열학과들이 연속적으로 과거의 기억으로 사라졌다.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대학의 미술학과에서는 매해 일정 수의 졸업생을 배출하고는 있으나, 미술판에 투신하려는 규모는 과거에 비해 현저히 적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을 찾아보기는 힘든 일이 되었다. 청주시립미술관이 ‘내일의 미술가들’ 기획을 2018년도 이후 4년 만에 진행하는 것도 상기의 이유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두 번의 전시가 청주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 세계를 정제해서 청주 이외의 지역에 작가들을 소개하는 홍보의 목적이 강했다면, 이번 《2022 내일의 미술가들 – 누구에겐 그럴 수 있는》 전은 지역이라는 경계에서 벗어나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을 살피는 전시로 기획되었음을 알린다. 그런 연유로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9명의 면면은 청주라는 카테고리보단 그저 ‘예술가’라는 것에 그 방점이 있음을 알린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예술을 대하고 있는 젊은이들의 관점을 통해서 현재 너머의 시대를 부분적으로나마 예측할 수 있는 전시로 관람객에게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청 주 시 립 미 술 관
1. 김동우 Kim Dong woo (1996)
김동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판타지적인 생명체나 풍경을 회화 작업으로 풀어낸다. 주로 일상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뉴스 등을 통해 이미지를 수집한 뒤, 상호이질적인 이미지들을 하나의 공간에 배치해 단편적인 회화 이미지로 조합한다. 작가는 별개의 이미지들 사이에 생기는 어색한 빈틈을 상상력으로 메꾸는 작업을 수행하는데, 이를 통해 또 다른 별개의 이야기가 생성되며 이러한 상황은 가상의 판타지를 연상시킨다. 작가는 최근 작업에서 두 가지 이상의 공간이나 상황끼리의 조합을 시도하는데, 가족사진을 임의로 오려와 상황과 시간을 무분별하게 배치한 뒤 하나의 섬으로 만드는 <표류하거나 벗어나거나>(2022)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회화적 결과물은 ‘나의 삶이 알 수 없는 무언가를 타고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질주하거나 표류하기도 할 것’이라는 의미로 전달된다.
2. 덩위펑 Deng Yufeng (1985)
덩위펑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개별의 지위를 획득하는 가장 기본의 단위를 ‘정보’ 즉 개인의 사적 정보라고 상정한다. 그 천착의 결과물 중 하나인 《영생-Immortal》은 오늘날 빅테이터 사회에서 국가기관은 물론 기업에 의해서까지 수집되는 개인 정보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덩위펑은 세계적인 언론매체를 초대하고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를 불특정 다수에게 전달함으로써 본인 스스로를 ‘완전히 공개된 인간’으로 만든다. 작가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서 개인 정보의 과도한 수집과 노출이 앞으로의 인류의 삶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보다 많은 대중이 엄중하게 느끼길 바라고 있다.
3. 마하라니 만카나가라 Maharani Mancanagara (1990)
마하라니 만카나가라는 인도네시아 출생으로 대학에서 출판 디자인을 전공했다. 작가는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사건과 민감한 사회·정치적 이슈를 본인이 스토리텔링한 허구의 우화로 대중과 소통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Hikayat Wanatentrem》 시리즈는 ‘Pulau Buru’ 정치범들에게 자행된 사건을 우화적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대중들이 평가 완료된 역사라고 믿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길 기대한다.
4. 박병규 Park Byung Gyu (1988)
박병규는 죽음에 대한 경험과 그 과정에서 비롯한 트라우마를 작업의 모티브로 활용해왔다.
건축자재인 H빔에 인위적 타공을 하고, 볼트와 너트의 분해· 조립을 반복하는 《W121D25H29》연작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죽음이라는 실체를 목전까지 경험한 개인의 강박으로 보거나, 죽음 앞에 초연해진 수행자의 모습으로 상반되게 인식된다. 박병규는 이번 전시에서 세가지 카테고리의 연작을 전시함으로써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자신만의 집을 지었다고 표현한다. 위에 언급한 《W121D25H29》연작이 건물의 기본 골조라 친다면, 이번 전시를 통해서 처음 공개되는 《Construction》 연작은 직접 도안한 알루미늄 펜스는 자신과 주변을 구분하는 경계, 즉 울타리이자 가상의 벽을 상징한다. 유리 표면에 빗방울이 증발하면서 생긴 흔적을 대형사진으로 인화한 《Black Windows》 연작은 자신만의 환영적인 집을 온전히 덮을 수 있는 지붕이라고 상정한다.
5. 성필하 Seong pilha(1989)
그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풍경의 사건들을 탐구하며 수집한 이미지를 작품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 성필하는 무심히 도심안에 자리한 자연풍경을 관찰하면서 누적된 작가의 관점을 회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선보인다. 화면을 구성하는 자연의 풍경들은 작가가 명징할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을 표현한 것들이다. 작가는 이렇게 확인된 것이지만 증명할 수 없는 풍경의 사건들을 캔버스 안에서 재구성하면서 본래의 이미지는 다른 치환에 집중한다.
6. 신용재 Shin yong jae(1985)
회화를 전공한 신용재는 나무 패널 위에 매일의 하늘을 직접 사생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작가는 기상으로서의 하늘을 그린다는 개념이 아닌, 그날의 소소한 사건에서 비롯한 감정선의 기록을 말한다. 사생하는 작가를 기다려주지 않는 일기의 변화는 어쩌면 작가의 내재된 기억에서 비롯한 감정의 변화일 수 있고, 그리는 행위를 통해서 바라본 대상에게 전이된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삶의 응어리들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낀다고 말한다.
7. 실라스 퐁 Silas Fong(1985)
홍콩에서 출생한 실라스 퐁은 홍콩과 독일 쾰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한국의 한 대학교에서 사진을 가르치며 작업을 진행하는 그는 한국 예술계에 당면한 문제의식이나 미술계에서 예술가가 처한 상황, 동시대 예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드러내는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8. 이은아 Lee Euna (1988)
이은아는 영상 매체를 필두로 삶의 단편, 일상을 내러티브 형식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작가에게 있어 기록은 낯선 곳에서 자신의 존재와 안전을 확인하는 행위이다. 장소, 상황, 공기, 냄새 그리고 그날의 전화 통화 등 그때가 지나면 사라지는 불완전한 현실의 파편들을 수집, 재조합하여 개인의 감상을 보편적인 개념으로 환원한다. 이를 통해 감상하는 각자의 개인적 경험이 전시장이라는 공간과 만나 보편적 서사로 자리하길 바란다.
9. 이규선 Lee Kyu Sun (1987)
이규선의 회화는 무딘 날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강한 내상을 줄 수 있는 녹슨 칼의 느낌을 띈다. 작가가 말하길 기법과 화법이 서로의 역할을 위임하고 뒤섞여 몰입하는 상황을 만드는 연출이 이규선의 회화라 말한다. 이규선은 대상을 구체화하는 회화작업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하지만 작가는 그럼에도 의미의 전달이나 상황의 재현에 초점을 두진 않는다고 말한다. 작업의 시작점부터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작가의 화면은 더 이상 가늠되지 않는 이미지로 관객과 조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