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태의 지속을 넘어 다차원으로 변화하는 오늘날, 시대의 현상을 마주하는 관찰자로서 예술가의 역할은 확장되고 있다. 현재 다양한 전시공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와 작품들 중 온전히 사회성을 배제한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예술의 1차 생산자인 그들은 예술의 근원 탐구만큼이나 우리 주변 것들에도 관심을 많이 두고 있다는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내 이웃을 배제한 미술의 가치에 대한 정의의 결론이 아닌, 동시대 미술이 대중 삶의 궤적에서 비롯된 관심사와 함께 호흡할 때 예술의 층위를 더욱 두텁게 만들 수 있다는 경험에 기인 했으리라 짐작된다.
작가들은 고립된 작업실이라는 공간에서 흡사 대기권 밖 정찰위성처럼 광활의 영역인 시대의 현상을 관찰한다. 정찰위성과 동시대 예술가들의 비슷한 점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정찰위성의 목적이 다양하듯 정찰된 정보에서 도출된 결과 또한 다양하다. 정찰위성들은 설정값에 맞게 결과를 도출하지만, 예술가의 결과물들은 실제를 숙주로 변이된 제각각 모습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유는 그들은 개인적 경험과 감정의 완전한 배제가 불가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들 서사의 특이점은 그들이 관찰과 수집을 통해 생산해 낸 사회현상 이면의 이야기들이 그들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다른 직군의 결과물보다 대중에게 친밀하게 작용하는 점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취하는 관조적 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과물들을 통해서 본인 이야기의 완곡한 이해를 바라지도, 누군가의 의식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그저 그들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다가올 내일도 우리와 우리의 주변을 소요하며 관찰하고 이야기로 만들 뿐이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나름의 굴절된 인식의 변주를 통해서 대중에게 여과되지 않은 이미지를 제공하고 이를 토대로 우리가 그나마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지점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전시는 그들의 관찰에서 비롯된 결과들의 고요한 나열이 어떻게 개인과 개인의 내적 소통으로 작용하는지 지켜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1. 민성홍/ Min Sung Hong
민성홍의 작업은 외부 자극과 변화로 인해 갈등과 고민이 극대화된 현대인의 처지와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가시화한 공간 설치 작업이다. 일상의 삶은 우리에게 다른 영역보다 우선하면서 동시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요소이다. 그중 개개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위치가 이동되면서, 불공정한 시스템으로 인해 잃거나 버려야만 했던 어떠한 물건들을 통해 보이지 않는 상호관계와 정체성을 얘기한다. 이렇게 남겨진 물건들을 개개인의 기억과 기능을 상실한 허물로서 여겨지지만, 이러한 사물들을 수집해서 각각의 형태들을 변형 재조합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삶 속에 내적 갈등을 가져오는 현실의 제약까지도 소중한 삶의 일부임을 작업으로 피력 하려 한다.
2. 배종헌 / Bae Jong heon
배종헌은 별 볼 일 없는 일상과 장소, 주변의 환경 자체를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군의 개념적 프로젝트들을 수행해 왔다. 회복 불가능한 행성에서의 현실적 삶의 예술을 꿈꾸고 있는 그는 산과 개천이 있는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자연과 상호 교감하는 서정적인 삶의 가치를 몸으로 체득했다. 초기에는 지극히 사적인 일상에서 후기산업사회의 불길한 징후들과 미시적 사회현상들을 읽어내는 비가시적 사고의 유형을 텍스트, 드로잉, 사진, 영상, 설치 등의 개념적 작업으로 표현했다. 최근에는 자연이 파괴된 도시환경 안에서 비존재적 자연의 잔영을 찾아, 잃어버린 시적 서정성과 미적 가치를 재인식하는 예술의 본질적인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3. 안경수 / An Gyung Su
안경수는 지난 10여 년간 교외의 여러 지역을 오가며 도시와 도시 사이 변두리의 풍경에 주목해왔다. 풍경이 되지 못한, 또는 풍경이기를 지향하는 욕망에서 비롯된 장면들을 보고 경험하는 일이다. 그러한 풍경은 한시적이며 가변적인 ‘부유하는 풍경’으로서 해석된다. 그는 주변부로 밀려난 더미들과 사물들을 사생하고, 그 결과물로서의 회화를 실제 풍경 위에 중첩하여 사진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다양한 장소에 거주하며 장소 특정적 풍경 및 현상에 주목하고, 그것을 그린 그림 자체를 하나의 새로운 층위로 규정함으로써 풍경과 맞닿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작가는 풍경의 부산물을 좇으며 체화한 감각을 회화의 언어로 변환한다. “쓸어 담기엔 너무나 미약한 먼지 같으면서도 방치하기에는 걸리적거리는” 특유의 장면들은 부유하듯 움직이고 사라졌다가 드러나기를 반복한다. 안경수는 이들을 유심히 바라보며 각각의 사물 및 장면 너머의 감각을 회화의 방식으로 천천히 재현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우리 주변의 모든 풍경은 그러한 부산물이 천천히 쌓여가는 풍경들”이다.
4. 안효찬 / Ahn, Hyo Chan
안효찬은 특정한 주제에 맞춰 작업을 생산하기 보다는 개인이 경험하고 반응하는 지점들을 입체와 설치형식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안효찬은 인간 욕망의 폭력성, 자본주의 문명의 암울함 등을 그로테스크하고 디스토피아적인 연극적 풍경으로 구축한다. <우리 안에 우리>, <생산적미완>, <희미한 구조>등의 작품으로 인간의 탐욕과 잔인함으로 부식된 세계부터 자연을 착취하여 얻는 삶의 조건, 형태를 다루고 있다.
5. 양승원 / Yang Seung Won
양승원은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하여 사실과 가공의 경계를 흔드는 유사 이미지를 생산, 인식론과 사진 영역의 확장 가능성을 탐색한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마주하는 상황이나 풍경을 인식하는 과정, 당대 사회의 감춰진 부분을 드러내며 당연시 여겨지는 인식의 과정에 균열을 가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확장된 개념으로 실재와 허구의 접점이 만들어내는 이질성을 포착하기도 하고, 자연과 모방의 간극에서 볼 수 있는 물질성의 차이, 지역과 장소의 표피적 이해에서 발생한 맥락이 거세된 현실의 풍경에 의문을 가지며 작업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험과 기억, 느낌과 감정을 시각화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알고 있지만 직접 보지 않은 무경험의 풍경을 만들거나, 납작하고 가벼운 사진의 매체적 특성에서 벗어나 기억의 파편처럼 액자 밖으로 꺼내어 조각적인 형태로 풀어낸다.
6. 이은정 / Lee Eun Jeong
이은정은 여성의 초상을 표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세계 각국 지폐에 삽화된 역사적 인물, 무명 종가의 종부, 외조모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가계도, 이주 여성의 초상 등이 작가의 작품에서 중심축을 이룬다. 이은정 작품의 특이점을 들자면, 우선 다양한 연작에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여성이라는 소재의 연결성은 생물학적 코드와 기법적으로 흐릿하게 표현된다는 공통점만 갖고 있을 뿐이다. 여성작가가 여성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쉬이 오해 살법한 페미니즘적 메시지는 없다. 작가는 소재에 내포된 사회성 짙은 내러티브에 신경쓰지 않고 오히려 전통 한국화 기법의 스며드는 부드러움과 흐릿한 것에서 드러나는 명확성에 몰두한다. 안료가 스밀 때 생겨나는 선의 가변성은 대상의 부드러운 형태로 보여지고, 중첩된 덧칠은 덩어리로 완성된다. 작가는 대상의 불투명한 경계의 표현기법을 통해서 지금의 우리가 인식하는 여성의 정의와 삶을 투영시키고자 한다.